고분자 나노소재 연구실이라고 하면 가지각색 화합물 모형과 알 수 없는 수학식이 가득한 화이트보드, 그리고 어려운 공학이론이 적힌 원서가 책장에 가득한 풍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김병수 UNIST 자연과학부 교수의 방은 달랐다. 수많은 사람의 응원과 환호가 들리는 듯한 황금빛 MVP 트로피와 형형색색 축구화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축구선수보다 더 열정 넘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병수 UNIST 자연과학부 교수는 수요일마다 공을 차는 아마추어 축구선수다. 대학시절에는 득점왕을 차지했던 뛰어난 공격수였다. 공 하나로 소통하는 축구의 미덕을 닮아서일까. 그의 고분자 나노소재 연구실은 고분자팀과 나노소재팀으로 나뉘어 있지만 서로 간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화학과 화공, 고분자, 에너지, 생물, 나노소재 등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지식을 나누고 새로운 원동력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난 8월에도 좋은 연구 성과를 냈다. 이상영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과 함께 나노셀룰로오스 분리막을 개발한 것이다. 이 분리막은 리튬이온전지의 성능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불순물을 화학작용으로 걸러낸다. 비결은 바로 미세한 구멍. 나노미터(nm, 1nm는 100만분의 1mm) 크기의 구멍을 지닌 기능성 나노셀룰로오스에 마이크로미터(μm, 1μm는 1000분의 1mm) 단위의 구멍을 가진 다공성 고분자 섬유를 붙여 만들었다.
나노소재팀에서는 전자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미세한 나노입자를 표면에 정교하게 집적하는 연구를 한다. 같은 나노 소재라도 어떤 형태로 결합했는지에 따라 물리현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래핀을 활용한 나노전극을 연구하고 있다. 기존에 고분자 박막을 만들 때 사용하는 다층박막적층법을 그래핀에 적용했다. 산화 그래핀에 탄소나노튜브와 나노입자, 고분자를 적층했을 때 두께가 수십 nm 이하의 표면에서 전극이 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김 교수는 “적층형 나노전극 연구는 전세계에서도 거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라고 밝혔다.
고분자팀은 최근 생체 내에서 쓸 수 있는 고분자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생체친화적인 고분자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PEG(폴리에틸렌글리콜)다. PEG는 구조가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인체에 무해하며, 수분을 많이 머금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섬유유연제와 정전기방지제, 세정제, 그리고 몸에 직접 닿는 연고와 샴푸, 로션 등을 만들 때 쓰인다. 하지만 PEG에도 한계가 있다. 다방면에서 두루 활용하려면 분자 구조를 변형해야 하는데, PEG는 화학적으로 구조를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연구팀은 기존의 장점을 유지하고 화학적으로 변형도 쉬운 차세대 PEG를 개발하고 있다. 약물을 전달한 다음에는 스스로 분해되거나 몸 밖으로 나갈 수 있어 인체에 훨씬 무해하다.
연구팀은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개발한 차세대 PEG 고분자로 현재 서울대병원 연구팀과 함께 동물 실험 중이다. 김 교수는 “고분자나 나노소재를 새롭게 개발해 미래에너지 소자로 응용하는 것은 물론, 암이나 치매 같은 난치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머리카락 두께보다도 훨씬 작은 소재가 과연 어떻게 이로운 물질로 탄생하게 될지, 연구팀에서 조만간 전해올 좋은 소식이 기다려진다.
[연구실 人사이드] INSPIRE & CHALLENGE!
‘득점왕’ 김병수 교수는 우수강의평가상을 여러 번 받았고, 세계적 수준의 박사육성지원사업인 글로벌박사펠로우십(GPF)에 선정된 학생을 네 명이나 배출했다. 그 비결은 바로 김 교수의 방에 적혀 있는 문구 “INSPIRE & CHALLENGE!”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만들기를 바란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주어진 문제만을 잘 풀지만, 연구를 잘하는 과학자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려면 항상 호기심을 갖고 영감을 떠올리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이정아 과학동아 기자 | zzunga@donga.com
<본 기사는 2016년 10월 ‘과학동아’에 ““머리카락보다 작은 소재의 활약을 기대하세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