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추정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의 표준게놈 지도가 세계 최초로 완성됐다. 표준게놈은 참조유전체(Reference genome)라고도 불리며 한 생물종의 대표 유전체 지도를 의미한다. 이번에 완성된 표준게놈은 멸종위기에 처한 표범의 보전과 복원을 위한 토대가 될 전망이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육식·잡식·초식 동물의 게놈 비교가 이뤄져 근력과 시력, 소화, 당뇨에 관한 유전자를 확인했다. 이 결과들은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서로 비슷한 유전자 공유한 한국표범, “멸종위험 높아”
박종화 생명과학부 교수팀과 국립생물자원관은 한국표범(Panthera pardus orientalis, 판테라 파르두스 오리엔탈리스)의 표준게놈 지도를 완성해 ‘게놈 바이올로지(Genome Biology)’ 11월 2일자에 발표했다.
아무르표범이라고도 불리는 한국표범은 호랑이와 함께 과거 우리나라에서 최고 포식자로 활약하던 고양이과의 맹수다. 현재는 북한 접경지역인 연해주 남서쪽에 60~70마리만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결과 한국표범의 게놈은 25억 7,000만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돼 있고, 1만 9,000여 개의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또한 개체 간 또는 동일개체 내 염기서열 변이가 거의 없었다.
박종화 교수는 “부모 양친에서 물려받은 유전자의염기서열 변이가 거의 없으면 부모세대의 유전자 서열이 거의 비슷해지므로, 개체간의 유전변이가 아주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유전적으로 다양성이 낮다는 걸 의미하며 멸종 위험도 매우 높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식성에 따른 포유류 게놈 비교 진행… 근력·시력·소화·당뇨 유전자 확인
한국표범의 표준게놈은 식성이 다른 동물의 게놈 비교에도 이용됐다. 연구진은 육식을 하는 고양이과(Felidae), 잡식을 하는 사람과(Hominidae), 초식을 하는 소과(Bovidae) 등 식성이 다른 포유동물 28종의 게놈을 사상 최대 규모로 정밀 비교했다.
그 결과 표범이나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에서는 근육 운동과 신경 전달, 빛 감지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또 고양이과의 뛰어난 반응성, 유연성 및 뛰어난 시력 등도 게놈에 반영됐음이 확인됐다. 반면, 사람과에서는 지방 대사 관련 유전자 등이, 소과에서는 냄새 감지 유전자 등이 잘 보존돼 있었다.
연구진은 특히 절대적 육식만 하는 고양이과의 식성에 주목하고, 이를 잡식성·초식성 포유동물의 게놈과 비교해 다르게 진화한 유전자를 확인했다.
고양이과는 육식성이 발달하면서 아밀라아제와 같은 탄수화물 소화 관련 유전자와 식물 독소의 해독에 관련된 유전자가 퇴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단백질 소화, 근육 및 운동 신경 발달 등에 관련된 유전자들이 특이하게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당뇨와 관련된 혈당조절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인해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 확인됐다.
박종화 교수는 “식성을 생물종 간 게놈 빅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연구는 세계 최초로 시행된 것”이라며 “근력, 시력 등 인체의 능력과 육식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추정되는 인간의 질병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에 밝힌 게놈 지도는 개방‧공유‧소통‧협력을 추구하는 정부3.0 정책에 따라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누리집(https://species.nibr.go.kr)을 통해 공개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연구는 UNIST와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4월 공동연구 협약을 맺고 추진한 결과 중 하나다. 공동 연구진은 고양이과 게놈 해독을 위한 국제컨소시엄에 참여해 1년 6개월여 간의 연구 끝에 한국표범의 게놈을 완전 해독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활용된 시료은 2012년 대전동물원에서 자연사하 표범 ‘매화’의 근육에서 얻었다. 연구진은 매화를 통해 표준게놈 지도를 만들고, 러시아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아무르표범 혈액을 확보해 추가로 유전체 서열을 해독하고 이를 비교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