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R&D투자는 그 규모 및 연구성과에 비해 활용도는 대단히 부진한 실정이다. 정부 R&D 비용은 19조원을 상회하며 GDP대비 R&D비율 또한 세계 1위이다. R&D성과의 양적 지표로 사용되는 논문과 특허 수는 세계 3위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 R&D성과물의 활용 및 경제적 가치창출 측면의 기술사업화 지표는 거의 꼴찌에 가까운 세계 43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밥은 배불리 먹어 외양은 좋게 만들었는데 체력은 여전히 부실한 꼴이다. 막대한 R&D투입이 국부(國富)창출로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R&D 성과물 자체가 직접적으로 국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R&D 투자 및 결과물 자체가 경제성과로 곧바로 이어졌다면 아마도 구 소련의 몰락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구 소련은 세계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개발할 정도로 강한 R&D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R&D로 대변되는 기술개발이나 과학적 발견이 경제적인 부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른바 사업화과정(기술개발이나 과학적 발견을 신제품 또는 신공정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추격경제하에서의 기술개발은 선진국에서 이미 성공한 제품 또는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었으므로 기술개발이후의 시장성과 그 활용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른바 추격자로서 한국은 선진국에서 하지 않은 신사업을 개척하는 모험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기존 사업들 중 성공한 제품을 더 빨리, 더 싸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한국의 경쟁력은 새로운 가치창출이 아니라 기존 산업에서의 원가경쟁력이었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창의성, 모험심, 도전의식보다는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불리는 성실성이었다. 방향설정을 위한 토론은 필요치 않았다. 이미 방향은 선진국이 설정해 놓았다. 우리는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러한 40여년간의 모방노력은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축적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몇몇 분야에서는 선진국보다 앞선 신기술개발로 이어졌다. 이른바 기술선도자의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기술선도자의 입장은 다르다. 신기술에 바탕해 어떤 사업, 어떤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느냐가 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 신기술을 개발했는데 그 기술을 활용할 시장을 발굴하지 못한다면 개발된 기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기술개발에 투입된 자원은 그대로 낭비되는 것이다. 경제적 가치창출이 없는 기술개발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이룩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에서 기업가적 대학이 탄생한 이유이다.
서구의 대학들은 과거 두차례의 대학혁명을 통해 전통적인 교육과 연구기능을 넘어 ‘경제개발에 대한 기여’라는 제 3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오고 있다. 경영대학에서 주로 가르치던 기업가정신과 비즈니스모델 교육을 공대 및 자연대로 빠르게 확산시키면서 기술창업과 사업화를 주도하는 과학기업가(science entrepreneur)를 양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MIT와 스탠포드이다. 이들 졸업생 기업들의 매출 총액은 각각 1조9000억과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각각 러시아와 프랑스의 GDP에 맞먹는 수준이다. 중국도 만만치 않다. 중국 칭화대의 기술지주회사의 매출액도 한화 6조원대에 달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적인 대학들은 지식 전달과 지식 생산자를 넘어 생산된 지식의 경제적인 가치창출을 주도하는 기업가적 대학으로 거듭 진화·발전하고 있다.
빠른 추격자에서 시장선도자가 되는데 기업가적 대학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대학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진화해야 한다. 과거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제공하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 개발된 신기술에 비즈니스 지식을 접목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주체로 거듭나야한다. 추격경제하에서 강조되던 주어진 길, 남이 걸어간 길을 성실히 따라가는 인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것이 최근 UNIST에서 기술사업화와 기업가정신교육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결코 쉬운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우리의 대학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을 것이다.
황윤경 UNIST 기술창업교육센터장
<본 칼럼은 2018년 1월 22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왜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인가?’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