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이 뛰어난 회사가 디자인적으로 우수한, 세상에 없던 제품을 내놓으면 그것이 바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됩니다.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 대학원 과정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관명 UNIST 디자인및인간공학부 교수는 디자인-기술 융합 전문대학원 설립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 1일 ‘디자인-기술 융합전문대학원육성사업’에 최종 선정되면서부터다. 2015년 1학기부터 수업을 시작할 UNIST 디자인-기술 융합전문대학원(UNIST 디자인대학원)은 디자인엔지니어링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디자인-기술 융합전문대학원 육성사업은 창조경제 구현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디자인 융합 고급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는 과제다. 디자인과 공학기술의 융합교육이라는 목표 아래 대학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UNIST를 비롯한 3개 대학교가 최종 선정됐다. 이들 대학은 5년간 8억 원씩 지원받으며 평가 후 3년간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다.(첫 1년은 2.5억 원, 4년간 8억 원 지원)
김관명 교수는 “세계적으로 ‘제품 디자인’은 산업 디자인과 공학 디자인을 통합한 ‘신제품 개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에 빠진 고리인 ‘디자인 엔지니어링’ 교육을 통해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디자인 엔지니어’이다… 제품 기획부터 생산까지 아우를 인재 양성
디자인 엔지니어링은 겉모습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학적인 구동이 가능한 실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산업디자인 영역에서 하던 제품의 외형 및 사용자 경험과 공학설계에서 하던 제품의 내부 기능의 구현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육이다. 양쪽 영역을 동시에 배우고 익힘으로써 컨셉 디자인이 아닌 상업화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게 김 교수의 포부다.
그는 디자인대학원 과정을 통해 자사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과 힘을 모아 자사 제품을 생산할 수준으로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등 하청업체 수준이 머무르고 있다”며 “그들이 가진 기술력을 활용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그를 기반으로 ‘한국의 다이슨’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 기업인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와 날개 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기업이다.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은 진공청소기의 성능이 떨어지는 데 불만을 느껴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라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다. 또 선풍기 날개가 사람들에게 위험하다는 인식에서 ‘날개 없는 선풍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기업은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구분이 없이 통합적인 접근법으로 세상에 없는 제품을 창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 교수는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새로운 모터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면서 성공한 것”이라며 “기술의 발달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여 보편화 되고 부품화된 요즘 같은 시대에는 ‘기존 기술을 응용해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고, 그런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디자인 엔지니어링 인재 양성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술력 뛰어난 중소기업 ‘디자인’으로 도울 것”
UNIST 디자인대학원은 울산 지역 중소기업 300개사가 회원으로 있는 중소기업융합울산연합회와와 함께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산학협동과정에 동의했다. 대학원생들은 매 학기 기업을 방문해 기술을 조사하고 사람들에게 편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의 니즈를 파악해 신제품을 개발하게 된다. 김 교수는 “학기를 마칠 때마다 반드시 구동이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제출하게 할 것”이라며 “4학기 중 3학기를 이런 과정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학생과 기업 모두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된 데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14년 동안 일을 하면서 깨달은 부분이 있어서다. KAIST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삼성중공업을 거친 뒤 벤처와 제품개발 전문회사에서 몸 담았던 그는 중소기업 대표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들이 하나 같이 품고 있던 소망은 ‘내 이름으로 된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부품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도 가장 큰 자랑거리는 삼성과 LG에 납품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를 실현시켜줄 디자인 엔지니어가 없었다.
그는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효과적인 한 가지 방법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완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며 “대학원의 교육과 연구에서 기술적인 가이드라인만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이런 역량을 갖춘 디자인 엔지니어를 길러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