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 제작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학교 급식 조리사로서 연륜을 쌓은 급식 대가, 배달부에서 시작해 어깨 너머 요리를 배운 후 현재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등 각자 영역에서 실력을 쌓은 ‘흑수저’와 요리계에서 소위 명인으로 알려진 ‘백수저’ 간의 대결 구도로 기획된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다. 흔한 기 싸움이나 상호 비방이 판치는 예능과는 전혀 다르다.
심사위원은 누가 요리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료를 활용했는지 모르는 채, 눈을 가리고 오직 맛으로만 요리 결과를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점은 바로 서로의 실력을 ‘인정’ 해준다는 것이다. 요리사들은 심사위원의 세심한 평가에 감탄하고, 백수저는 경쟁에서 패배를 했을 때 흑수저의 승리를 축하하고 격려해준다. 백수저에게 패배를 한 흑수저에게는 단지 명인과 경쟁했다는 것이 영광이다. 이 프로그램은 노력과 헌신, 그리고 적절한 기회만 있으면 누구나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도 서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더 잘하라고 격려해주면 좋겠다. 최근 안내견 훈련 자원봉사자가 훈련을 위해 안내견과 함께 모 마트에 방문하자, 마트의 매니저가 나와서 소리를 지르며 이들을 내쫓았다는 뉴스를 접했다. 꼬리를 내리고 바닥에 엎드려 두려움에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안내견의 사진을 본 네티즌의 공분을 산 소식이었다.
안내견을 동반한 자의 공적 공간 출입은 법으로 보장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개를 데리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마트에 오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시각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기능을 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 남보다 약하거나 느리다고 내칠 것이 아니라, 조금 도와주면서 이 사회에서 빛을 발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노인들도 이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는 여전히 필요한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2035년에는 3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20여년 동안 교육, 40여년 동안 가족 부양을 하며 일을 한 후 퇴직 후 20~30년이라는 삶의 다음 단계가 남아 있는 인구가 늘었다는 의미이다. 노인들은 단순히 65세 이후에 집에서 쉬거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아직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는 구성원이다. 노인들은 청년들에 비해 신체적, 인지적 약점을 가지긴 하지만, 경험은 풍부하다는 강점을 지닌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환경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가령, 독일의 자동차 회사 BMW에서는 고령화된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공장 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체력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 하면, 미끄러지지 않는 특수 신발 착용, 읽기 쉬운 컴퓨터 화면을 설치하고, 근로자가 서 있지 않고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에는 BMW 차 한대 값도 안되는 비용이 들었을 뿐이며, 이러한 환경에서 청년과 노인 근로자가 각자 잘하는 부분을 담당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였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초고령화 사회를 단순히 ‘위기’라고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고 노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초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이에 따르는 연금 개혁이나 비용 부담 등에 대한 주제가 자칫 세대 간 제로섬 게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노동 비용 절감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 급하게만 달려왔다. 저출산에만 천문학적 비용을 쏟을 게 아니라 경륜이 있는 노인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투자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노인과 청년 모두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으므로, 서로 보완하며 함께 살 방안을 지금부터 찾아내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장차 100세 노인이 될 미래 사회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칼럼은 2024년 10월 2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16)]“이건 인정””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