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기 스펙트럼 자원은 한정돼있다. 무선 통신은 이러한 제한된 스펙트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전돼왔다. 그런데 이 스펙트럼 자원은 공기나 태양처럼 모든 인류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원이 아니다. 이 스펙트럼 자원은 개발해야 하는 자원이다.
그렇다면 천연자원은 전무하지만 우수한 인력이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꽤 매력적인 자원이다. 이 자원을 이용해 대한민국은 정보기술(IT) 산업의 성장을 주도해 왔다. 2G에서 5G에 이르기까지 통신 세대마다 우리나라 통신기기들이 전 세계에 위상을 떨쳐왔다.
스펙트럼은 시간 자원과도 상통하다. 단위 시간당 정보를 얼마나 빨리 처리하느냐, 그 정보를 단위 시간당 얼마나 많이 보내느냐가 결국 IT 발전의 핵심이다. 이것이 반도체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됐다. 그럼 스펙트럼 자원은 다 고갈되었는가. 아니다. 밀리미터파 대역, 그리고 소위 테라헤르츠파 대역은 아직 미활용 스펙트럼 영역이다.
테라(Tera)는 10의 12승을 나타내는 국제단위계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테라스’에서 유래했다. 그리스어의 테라스는 괴물을 뜻하는 단어다. 그만큼 매우 크고 상상 밖의 숫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가지 국제단위계를 더 살펴보면 ‘Tera’ 보다 1000배 작은 ‘Giga’는 그리스어로 “gigas’, 즉 ‘great’, ‘매우 큰’ 이라는 뜻이다. ‘Giga’보다 1000배 작은 ‘Mega’는 ‘megas’, 역시 크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어로 1000을 뜻하는 단어가 ‘kilo’라는 단어가 존재했던 것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1000정도까지는 셀 수 있는 영역의 숫자라고 여겨졌던 것 같다.
상상하기 어려운 괴물과도 같은 수를 나타내는 ‘테라’.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기술은 그 이름처럼 인류에게 요원한 상상의 영역일까.
테라헤르츠파는 초당 1000억번 진동하는 물체를 투과하는 전자기파다. 이렇게 빨리 진동하는 전파는 다루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통신처럼 범용으로 활용되기에는 가격의 문제가 있다. 테라헤르츠파는 범용적이지는 않지만, 특정 대체 불가한 영역에서는 현재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우주관측, 보안용 센서, 그리고 핵융합 가열장치 등이 그 예다.
일본의 국립 정보통신연구기구(NICT)는 대학 및 산업체와 연합해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달표면 탐사 프로젝트(TSUKIMI Project) 및 화성 물탐사 프로젝트(TEREX) 등을 2021년에 론칭했다. 미국의 DARPA는 2010년대 초부터 국방, 무선, 센싱용 테라헤르츠파 기초연구를 지금까지 꾸준히 투자해오고 있다. 최근 민간 영역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핵융합 분야의 주요 기술 중, 테라헤르파를 이용한 플라즈마 가열 기술은 핵융합 플라즈마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이렇듯 주요국에서는 테라헤르츠파 스펙트럼 자원을 기초연구 투자를 통해 확보해가고 있다.
테라헤르츠파 대역은 이제 인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전자기 스펙트럼 자원이다. 제한된 스펙트럼 자원이 당장의 소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개발을 멈춰서는 안된다. 기업은 단기간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투자를 강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국가 주도의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국가는 테라헤르츠파의 ‘niche’ 한 분야의 투자를 통해 스펙트럼 자원 확보를 위한 기초 체력을 지속적으로 길러두어야 한다. 그래야 향후 꽃피우게 될 테라헤르츠파를 이용한 산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벚꽃이 지고 화려한 철쭉이 봄을 풍성하게 하는 것처럼, 테라헤르츠파 스펙트럼 확보를 통해 앞으로의 대한민국 먹거리 기술이 풍성히 꽃피길 기대한다.
<본 칼럼은 2024년 10월 15일 전자신문 “[통신칼럼] 유한 속 무한성, 테라헤르츠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