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대통령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 덕택에 전직 미국 대통령 관련 정보도 여기 저기서 접하게 되었다. 그 중 아이젠하워는 연설문을 직접 작성한 대통령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이젠하워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한 육군 참모총장이었는데, 연합군을 ‘십자군’과 비교하며 엄중한 언어로 쓴 연설문을 통해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젠하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할 것을 대비해 연설문을 써놓기도 했다고 한다. 이 연설문에서 아이젠하워는 “나는 군을 철수했다. 나의 공격 결정은 최선의 정보에 기초한 것이었고, 공군과 해군 모두 용감했고 헌신을 다했다. 잘못이나 비난받을 일이 있다면 전적으로 나에게(mine alone) 그 책임이 있다”고 하며, ‘나’를 주어로 하여 본인의 책임을 명백히 했다.
리더라면 누구나 주위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을 것을 꿈꾼다. 멜라네시아 사회에서 ‘빅맨’(Big Man)이라 불리는 거물급 리더는 소규모 공동체 내에서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이다. 빅맨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지역사회 내에서 명성과 영향력을 얻는다. 한 가지 방법은 용감하고 현명하며 외교에 능숙한 것과 같은 탁월한 리더십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필요시 구성원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자원을 축적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 다른 공동체 구성원보다 더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류학자 마샬 살린스는 이러한 유형의 정치 시스템이 불안정하다고 설명하며, 여러 파벌과 여러 빅맨이 지위 획득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므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효과적 리더십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때로는 진정한 리더십을 수행하기 보다는 그 이미지 구축에만 더 힘을 쏟는 경우도 있다.
벨기에 출신 아티스트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가 1929년에 발표한 ‘이미지의 배신’이라는 연작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하나는 파이프가 그려진 작품이다. 화폭에는 짙은 갈색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덧붙여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라고 적혀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파이프라는 이미지일 뿐, 파이프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빅맨’ 리더십에 대한 적절한 은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림에 나오는 파이프와 마찬가지로 ‘빅맨’의 훌륭한 리더십은 단지 이미지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신’ 연작 중에는 사과 그림도 있다. 마찬가지로 사과 그림과 함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는 캡션이 적혀 있다. 이는 최근 한국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은 사과를 보여주는데, 실제로는 사과 그림일 뿐이었다. 대통령의 사과는 들끓는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택한 형식적인 것에 그쳤고, 무엇을 잘못했으며 어떻게 국정을 쇄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다. TV를 통해 담화와 기자회견을 지켜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는 친절한 캡션이 필요했다.
거물급 리더들이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일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만 지속된다면 그들의 권력조차도 진정한 실체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리더들은 거창한 주장으로 능력과 비전의 부족함을 가릴 뿐, ‘나’를 주어로 해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공동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십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 그러한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본 칼럼은 2024년 11월 13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17)]빅맨의 파이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