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을 당하면 세계 경제에 연간 1조달러(약 1450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말이다. 중국이 침공해 대만 TSMC 공장이 멈추면 피해가 얼마냐는 의회 질문에 대한 답이다. 1조달러면 세계 경제 규모의 약 1%다. 사태가 길어지면 대미지는 일파만파다. 코로나19 대침체가 다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다.
문득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이 어딘가로부터 폭격을 당하면 그 피해가 얼마일지 궁금해졌다. 한국이 유사시 세계 경제에 연간 1조달러의 타격을 줄 공장을 10개 가지고 있다면 한국의 충격은 곧 대공황 수준의 쇼크가 된다.
미국은 주요국의 가치를 다 계산해 놨을 터다. TSMC가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를 발표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금방 달라진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코멘트하지 않겠다”던 그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경제안보 시대의 전략기술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다.
패권국이 아닌 국가 입장에서 전략기술의 정의는 ‘높은 울타리(high fence), 작은 마당(small yard)’으로 귀결된다. 울타리를 넘어갈 수 없는, 그래서 모두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은 마당은 전략적 요충지(chokepoint)다. 요충지가 막히면 세계 경제는 치명타를 입는다. 특정국이 생존을 위협하면 결정적 순간에 목을 조를 수 있는 무기(chokehold)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기술을 많이 보유한 국가는 전략적 존재가 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경제안보력이다. 21세기 지정학은 글로벌 혁신생태계 지도를 놓고 벌어지는 한판의 전쟁이다. 국가마다 특정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과 대체 불가한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미국이 관세 폭탄으로 세계의 전략기업과 전략기술을 쓸어 담으려 한다고. 그것은 미국의 계산일 뿐이다.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이 다 바보는 아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자국에 있는 마더(mother) 공장과 연구개발(R&D)이 사라지는 날, 여기저기 펼쳐 놓은 글로벌 투자와 연구 거점도 동시에 끝장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생존이 보장되니까.
2008년 일본경제신문사가 발간한 <전략의 본질>은 아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제안보 시대는 전쟁이나 경제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전쟁사에서 배우는 역전의 리더십은 지금의 세계 경제에 적용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레토릭’이 출발이다. 아시아 국가가 미국의 기술을 훔쳤다지만, 그런 식이면 기술을 훔치지 않은 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는가. 그런데도 일방적 주장에 따른 후속 전략이 정치적으로 자동 생산되는 전략이다.
열세 상황에 놓인 국가로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어쩌겠나. 진짜 전략은 불리한 상황에서 창조된다. 전략이 본질의 통찰이어야 하는 이유는 문제를 푸는(solve) 것과 복잡한 갈등을 헤쳐나가는(resolve)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리자는 전략도 그사이 ‘새로운 시간’ ‘새로운 공간’ ‘새로운 파워’를 창출할 때 유효하다. 그래서 전략은 기본적으로 변증법이다.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다른 것은 둘째치고 당장 전략은 신뢰라고 한다면 정부와 기업 사이 신뢰부터 바닥이다. 전략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전략을 이끌 리더와 리더십이 안 보인다. 정부가 있어도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경제안보는 정부와 기업의 총력전(all-out war)이다. 기업인은 본능적으로 본질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정치인은 너무 느리다. 뒤늦게 깨달아도 정파의 득실이 눈을 가린다. 국가 운명이 달렸다는 인공지능(AI)과 과학기술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간 방송 장악 힘겨루기에 밀려 완전 뒷전 신세다. 한시가 급하다는 국가전략 R&D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코미디 같은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는 그대로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전략가들이 한국을 망친 원인으로 꼽을 비극적인 장면이 사방에 넘친다. 국익이 아니라 사익이 전략을 지배하는 나라는 모조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본 칼럼은 2025년 3월 18일 한국경제 “[다산칼럼] ‘혁신의 정치학’을 다시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