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두 개 남은 두쫀쿠 내가 다 사왔어!” 큰딸이 집에 들어오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줄 서서 기다린 딸 덕택에 우리 집 네 식구가 두 개의 ‘두바이 쫀득쿠키’(이하 ‘두쫀쿠’)를 반씩 나눠서 맛보게 되었다. 초콜릿과 마시멜로우를 섞어 만든 쫀득한 표면에는 코코아 파우더가 두텁게 묻어있고, 가운데를 잘라보니 안쪽에 잘게 썬 카다이프 필링이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섞여 가득했다. 겨우 반쪽이었지만 다 먹고 나니 두쫀쿠의 진한 단맛과 고소한 풍미가 입 속에 길게 남아 있었다.
최근 칼바람이 부는 영하의 날씨에 롱패딩과 털장갑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두쫀쿠를 파는 카페가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을 서 있는 풍경이 흔해졌다. 두쫀쿠는 카페, 베이커리와 같은 자영업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의 효자 품목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카페는 두쫀쿠를 주력 상품으로 삼으면서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으며, 급격한 수요 증가 때문에 재료 수급이 잘 안될 정도라고 한다. 온라인에서는 ‘두켓팅’(두쫀쿠+티켓팅)이 활발하다. 사람들은 예약 수령이 가능한 곳에 최대한 빠르게 연락해서 미리 두쫀쿠를 확보해 두거나 배달 앱에서 대기하다가 두쫀쿠가 등록되자마자 서둘러 주문하기도 한다.
탕후루, 밤티라미슈, 두바이 초콜릿 등에 이어 이제는 두쫀쿠까지, 한국인들의 디저트 열풍은 멈추지 않는다. 정작 두바이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두쫀쿠는 이국적 재료로 한국적 디저트를 만든 좋은 예이다. 두쫀쿠의 인기가 과연 1년 이상 지속될지 아니면 그 전에 다른 디저트가 이를 대체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저기서 고객 유인책으로 활용되는 이상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심지어 국밥, 곱창, 장어 등 각종 식당까지 “두바이 쫀득쿠키 안에 있어요”라는 문구로 지나가던 고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헌혈의 집에서 두쫀쿠를 답례품으로 지급한다고 공지를 낸 후 헌혈율이 지역에 따라 2배에서 5배까지 증가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헌혈 가능 인구(16~69세) 대비 헌혈을 하는 사람은 2019년 5%대였던 것이 코로나19 당시 급감한 후 3%대에 머물러 있다. 저출산 및 고령화 때문에 주요 헌혈층인 10~20대 인구가 급감한 탓도 있겠으나, 2021년부터 헌혈과 같은 개인 봉사활동 실적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도록 한 교육정책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두쫀쿠 지급 이벤트가 공지되자 헌혈의 집 앞에 젊은이들이 ‘오픈런’을 하게 되고 소위 헌혈수급의 ‘보릿고개’라고 불리는 겨울철에도 헌혈 참여 증가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헌혈은 경제인류학적으로 볼 때 전형적인 ‘일반화된 호혜성’(generalized reciprocity)의 한 예이다. 즉각적인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베푼 선의가 언젠가 내게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 교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상이 없는 헌혈에는 늘 ‘숭고한 희생’이라는 도덕적 언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언어만으로 시민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시민들이 특별히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요구되는 도덕성이 높아질수록 마음속에서는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왜 내가 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헌혈은 더 이상 연대의 행위가 아니라 부담스러운 의무로 느껴지고, 결국 외면의 대상이 되기 쉽다.
가치재인 두쫀쿠와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혈액의 교환. 이를 우리는 도덕의 타락으로 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도덕이 살아남기 위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쫀쿠 헌혈 캠페인은 젊은 세대에게 선한 행위의 문턱을 낮춘다. 거창한 자기희생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남긴다. 어쩌면 헌혈과 같은 공공선의 실천은 이제 얼마나 숭고한가보다는 얼마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본 칼럼은 2026년 1월 28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29)]‘두쫀쿠’와 ‘영블러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매일시론] AI가 의식을 가진다면](https://news.unist.ac.kr/kor/wp-content/uploads/2026/01/artificial-conscience-190x122.jpg)
![[배성철 칼럼]30대 1 뚫은 ‘AI 인재’, 울산의 미래를 결정한다](https://news.unist.ac.kr/kor/wp-content/uploads/2026/01/talent-190x122.jpg)
![[안현실 칼럼]‘창조적 파괴’ 이끌 AI 대학이 출범한다](https://news.unist.ac.kr/kor/wp-content/uploads/2026/01/AI-Univ.-190x122.jpg)
![[목요칼럼]위안화 결제, 단순한 유행인가 수출 돌파구인가](https://news.unist.ac.kr/kor/wp-content/uploads/2026/01/currency-190x12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