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래 총장은 자신을 ‘촌놈’이라 소개했다. 서울대 졸업 후 모교에서 근무했지만,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학창 시절을 경상남도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로고가 새겨진 근무복 차림이다. 단순히 편해서가 아니다. 지역에서 출발해 다시 지역 혁신의 전면에 선 총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긴 상징이다.

박 총장은 UNIST 부임 이후 줄곧 ‘AI 기반 혁신’을 강조해 왔다. 우리나라 최대 중화학공업 도시인 울산의 기업들이 AI를 통해 산업 구조의 대전환을 이루도록 지원하는 한편, 대학 운영 전반에도 AI를 도입하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l 출처 : 헬로디디
“울산은 국가산업단지라는 엄청난 자산을 가진 도시입니다. 지역 산업의 특색을 뒷받침할 AI 기술을 접목해 울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박 총장은 UNIST 부임 이후 줄곧 ‘AI 기반 혁신’을 강조해 왔다. 우리나라 최대 중화학공업 도시인 울산의 기업들이 AI를 통해 산업 구조의 대전환을 이루도록 지원하는 한편, 대학 운영 전반에도 AI를 도입하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테크 브릿지(Tech Bridge)’ 전략이다.
대학의 주요 기능은 인력 양성과 연구다. 그러나 박 총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이 발표한 ‘2025 라이덴랭킹’에서 UNIST가 9년 연속 국내 1위를 유지한 만큼, 이제는 연구 성과가 실험실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현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의 질은 이미 입증됐다. 다음 과제는 산업 연결이다.
UNIST는 단순한 교육기관에 머물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울산의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이자 세계적 연구 거점으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지역을 바꾸고 있다. 부울경 제조업의 AI 전환을 이끌고 있는 박 총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 “연구는 훌륭하지만, UNIST의 다음은 지역 기여”
“연구의 양도 질도 탑 수준이지만 산업체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고질적 문제였습니다.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려면 많이 만나야 합니다.”
울산은 자동차, 조선·해양, 석유화학·정유 산업이 집적된 우리나라 대표 공업도시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백에서 수천 개의 협력사가 연결된 구조 속에서 중소·중견기업들이 촘촘히 얽혀 있다. 제조업이 공간적으로 밀집된 산업 도시다.
최근 AI 등장으로 제조업 고도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UNIST는 HD현대와 함께 ‘조선·해양 산업 AI 기술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며, 한국수력원자력과도 ‘AI 기술을 활용한 전면적 업무 지능화’를 추진하고 있다.

박종래 총장(가운데)이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왼쪽),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지난해 11월 20일, 경기 성남 HD현대글로벌 R&D센터에서 ‘조선·해양 산업 AI 기술개발’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 출발점은 ‘UNIST의 연구가 지역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UNIST는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춰 왔고, 우수 연구 성과도 다수 배출했다. 라이덴 랭킹 국내 1위라는 성과가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논문은 많았지만 산업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는 약했다.
박 총장은 이를 ‘다음 단계’로 규정했다. 대학과 기업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늘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처음 열린 ‘울산혁신포럼’이다.
“교수와 연구진의 연구 성과는 상당하지만 산업 현장과의 접점이 부족했습니다. 연구자와 기업인이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AI를 주제로 산업 전환을 논의하는 울산혁신포럼입니다.”
울산혁신포럼은 연구와 비즈니스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테크 브릿지 역할을 하며 1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 2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박 총장은 테크브릿지 전략을 통해 UNIST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의 R&D ‘머리’ 역할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추진 중인 것이 연구 인력과 시설, 자원을 기업에 개방해 기술 기획부터 개발까지 함께하는 구조다. 현재 기업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오픈랩을 운영 중이다. 실제로 슈퍼컴퓨팅센터와 연구장비 교육·지원 시설을 개방해 중소·중견기업에게 필요한 분석, 검증, 시제품 제작, 상용화까지 지원하는 원스톱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울산의 산업 구조는 대기업 중심의 다단계 밴더 체계다. 4차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R&D를 할 필요가 적었다”면서 “R&D 인력도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지역 산업은 ‘머리는 없고 손발만 움직이는 구조’로 고착되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의 방향은 지역 기업의 머리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총장은 “산업현장에 필요한 연구를 위해 UNIST는 작은 아이디어도 창업할 수 있도록 교수 창업제도도 개편했다”면서 “4대과기원 중 UNIST는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어 조선·해양특화 연구가 가능하며 여기에 필요한 AI제조 도입을 지원할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이미 지역의 관련 기업들과 협업 중이다. UNIST의 지식과 노하우를 지역 사회에 이식하고, 울산을 산업 조정의 메카로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협력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도록 테크 브릿지를 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UNIST는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이 발표한 ‘2025 라이덴랭킹’에서 9년 연속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박종래 총장은 지역기여부분에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지역 기업의 AI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 AI 지원, 울산 넘어 동남권으로
울산의 AI화는 단순히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AI등 과학기술을 통해 UNIST가 부울경 전체를 아우르는 ‘동남권 펜타곤’의 중심 센터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추진 중인 것이 2021년 설립된 UNIST 노바투스대학원이다. 국가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기업 현장의 실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노바투스대학원은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첨단 기술을 신속히 전파하고 현장 적용이 가능한 실무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그는 “노바투스대학원을 통해 각 지역 산업적 특색을 뒷받침하는 AI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재직자 대상 교육으로 경남, 울산, 부산 등 여러 지역에서 운영 중으로 기업의 AI화가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타지역 확산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박 총장은 파편화된 동남권 창업자원을 통합, 연구 성과가 ‘창업–기술지주투자–사업화’로 이어지는 체계적 구조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재들을 한 지역에 묶어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울산에서 배우고 도전하고 창업하고 싶은 청년이 있다면 그 선택이 불리하지 않도록 만들고,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UNIST 주변에 청년 테크단지를 만들어 창업-문화-교육이 어우러지게 해야한다. UNIST뿐 아니라 부울경 청년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고 피력했다.
◇ 노벨상 넘어 노벨같은 인재로… 개척자형 인재 육성
“노벨상을 타는 인재가 아니라 노벨 같은 인재를 만들어 상을 주도록 해야지요.”
박 총장은 앞으로 필요한 인재에 대해 “변화의 시대를 헤쳐 나갈 능력을 가진 인재”라고 꼽았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사물과 현상이 작동하는 원리와 그 파급력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일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변화의 시대를 이끄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논문이나 학위 중심의 학문적 성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알프레드 노벨처럼 연구 성과를 산업과 사회적 가치로 연결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그는 “기초과학 투자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구 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울산과학기술원(UNIST)는 교육 자체의 변화를 위해 교수 강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도구를 자체 개발 중이다.
박 총장은 “고교 교육은 이미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이제는 대학이 답해야 할 차례”라며 “입시 이후 학생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 대학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동안 외부 기관의 평가를 받아왔을 뿐, 우리 교육을 스스로 점검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며 “변화에 강한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고 있는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평가 체계를 마련해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총장은 ‘캠퍼스 AI화’도 집중할 계획이다. UNIST는 지난해 11월 국내 대학 최초로 생성형 AI 기반 플랫폼 ‘유니아이(UNIAI)’를 자체 구축해 정식 오픈했다. 캠퍼스 내 복잡한 규정과 지침에 대한 반복 질문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챗봇 시스템이다. 앞서 UNIST는 캠퍼스 AI화를 통해 기술이전 계약서 검토 기간을 한 달에서 하루로 단축하기도 했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를 헤쳐 나갈 능력을 키우는 것이 대학의 책무”라며 “대학이 먼저 AI를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교육과 행정 전반의 혁신을 이끌어내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2026년 2월 25일 헬로디디(대덕넷) “박종래 총장 다음 목표 “부울경 제조업 AI 전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