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와 인터뷰를 준비할 때 연구실 홈페이지는 꼭 방문해 본다. 그 사람에 대해 그만큼 잘 정리된 정보처도 없기 때문이다. 이창하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의 홈페이지를 들어갔을 땐 대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연구실 학생들과 이 교수의 모습이 담긴 수많은 사진들이었다. 최근 테뉴어(종신교수) 심사 통과를 축하하는 파티 모습에서부터 학회, MT, 그리고 영화 관람에 이르기까지 연구실 가족이 함께한 자리는 어김없이 사진으로 남았다. 그들을 실제로 만나보자 이해가 갔다. 격의 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오염문제 해결할 고도산화공정
이 교수의 연구주제는 물이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수처리가 전공이다. 수처리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교수는 화학적 방법, 그 중에서도 활성산소의 한 종류인 수산화 라디칼(·OH)의 강한 산화력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고도산화공정’을 연구하고 있다.
수처리는 100년 이상 된 오래된 기술이지만 고도산화공정이 도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산업 발달로 기존의 방법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물질들이 발생하면서 그에 맞춰 새로 도입된 정화 기술이기 때문이다.
특히 1991년에 발생한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큰 전환점이 됐다. 보통 수돗물은 응집-침전, 모래 여과, 염소 소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수된다.
그런데 당시 공장에서 배출된 페놀은 이 과정으로는 제거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페놀은 염소를 만나 염화페놀이 되면서 오히려 독성이 더 강해졌다.
최근에는 적조와 녹조, 그리고 가뭄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 역시 수처리 기술이 발전해야 해결할 수 있다. 염소 소독이 값이 싸고 소독 효과도 좋긴 하지만, 일부 자연 유기물과 만났을 때 발암물질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고도산화공정이다.
이 교수는 “고도산화공정은 난분해성 물질을 제거하고, 사용되는 염소의 양을 낮추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수처리도 이젠 나노시대
고도산화공정의 대표적 기술은 오존을 이용해 수산화 라디칼을 발생시켜 물을 분해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오존은 잔류 시간이 30분에 불과해서 소독에 필요한 수산화 라디칼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약간의 염소만 넣어도 소독 효율은 훨씬 높으면서도 염소의 총 사용량은 줄이는 공정이 가능하다. 물에 과산화수소(H2O2)를 넣고 자외선을 쪼여 수산화 라디칼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들은 현재 상용화 단계에 있다.
이 교수는 이 기술들의 성능을 높이는 연구와, 가시광선과 나노물질을 이용하는 새로운 정수처리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나노 크기의 산화티타늄(TiO2)에 빛을 쬐면 물을 분리하는 광촉매로 작용해 수산화 라디칼을 만든다. 이 때 산화티타늄이 자외선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들을 첨가해 가시광선에서도 광효율을 높이는 것이 과제다.
또 수돗물 가격은 1t에 1000원이 안 되는 반면 나노물질은 너무 비싸다는 단점도 해결해야 한다. 물이 생존에 필수인 만큼 배보다 배꼽이 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가시광선으로 정수처리를 하면 낮에는 자연광으로도 정수처리를 할 수 있다”며 “나노기술을 잘 활용하면 수처리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실 人사이드] Be the ARTist
이창하 교수 연구실의 별칭은 ART(Advanced Redox Tech-nology) Lab이다. 학생들 각각이 한 명의 아티스트(ARTist)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이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는 이 교수지만, 연구만큼은 학생들 개개인이 독립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고 믿고 엄격하게 지도한다. 대학원을 졸업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연구 계획에서부터 논문 작성까지 혼자서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서동준 과학동아 기자 | bios@donga.com
<본 기사는 2016년 4월 ‘과학동아’에 ‘‘산소로 정화한 물, 마셔볼래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