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복 UNIST 자연과학부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의 연구실에는 아주 특별한 장치가 있다. ‘내부광전자방출 측정시스템’이다. 실리콘과 같은 반도체 표면에 금속 박막을 올려 다이오드를 만든 뒤 다양한 에너지의 광자를 쏘이면서 전류를 측정하는 장치다. 소자 계면의 전자에너지 장벽을 알아낼 수 있다. 다른 연구실에 없거나 성능이 뛰어나서 특별하다는 게 아니다. 이 장치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학부생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연구원들이 직접 만든 측정시스템 덕분에 꿈의 다이오드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연구원(윤훈한, 정성철, 최가현, 김준형)들이 2012년 학부생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 주제를 끈기 있게 탐구해 얻어낸 가치 있는 연구 성과”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인터뷰도 연구원들을 자랑하고 싶어서 수락했을 정도라고.
내부광전자방출 측정시스템 제작을 주도한 윤훈한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왼쪽에서 다섯 번째)의 이야기도 직접 들어봤다. 윤 연구원은 “1학년 1학기 때 박기복 교수님의 일반 물리 수업을 듣다가 강의에 홀딱 반해서 무작정 연구실을 찾아갔다”며 “교수님께서는 ‘측정 프로그램을 짜는 것부터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연구실에 받아 주셨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학부생 연구프로그램 과제로 채택돼 우수상까지 수상했다. 학부생, 그것도 1학년생이 연구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박 교수는 “UNIST는 학부생들도 실험실에 들어가서 연구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며 “오히려 학부생은 논문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이 적기 때문에 즐겁게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측정시스템은 ‘랩뷰’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다. 복잡한 측정 과정의 제어와 데이터 처리를 자동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학부생 때부터 직접 짰다. 그렇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다고.
박 교수는 “기초과학 및 국가 보안 기술 연구의 중심인 미국 로스알라모스국립연구소는 연구원을 채용할 때 직접 새로운 실험 장치를 구축하고 이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면서 “우리 연구실에서는 모든 연구원들이 프로그래밍을 배울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실험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본인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 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반도체 산업에 바로 적용 가능
박 교수가 그토록 자랑하는 연구원들이 만든 꿈의 다이오드는 대체 어떤 것일까. 반도체 표면에 금속막을 증착해 만드는 금속/반도체 접합 다이오드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반도체 소자다.
그런데 접합면에서 두 물질의 원자가 뒤섞여 전류 누설이 늘어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어 이상적인 다이오드 제작이 어려웠다. 교수팀은 금속과 반도체 접합면에 탄소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그래핀을 끼워 넣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핀을 이루는 탄소 원자들의 사이 사이는 양자역학적 전자 밀도가 높아 어떤 원자도 투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이오드 하나의 성능을 높이면 수많은 다이오드가 사용되는 전자기기나 전기자동차의 효율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특히 이번 연구는 ‘실리콘 반도체의 경우 금속의 종류에 관계 없이 접합면의 전기적 특성이 거의 같다’는 이론적 예측을 확인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 때 연구원들이 만든 측정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다이오드의 전자에너지 장벽을 측정해 이론을 검증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나노레터스’ 1월호에 발표했다.
박 교수는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유레카의 순간도 경험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연구원들이 숨어 있는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키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실 人사이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다 같이 식사합시다
연구실의 특징을 묻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모두 함께 밥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그게 뭐가 특별할까 싶지만 흔치 않은 일이라고.
윤 연구원은 “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연구 얘기를 하다보면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일도 있다”면서 “연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연구 외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연구실 부속품이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 연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수랑 과학동아 기자 | hsr@donga.com
<본 기사는 2017년 3월 ‘과학동아’에 “꿈의 연구실에서 만든 꿈의 다이오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