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쾅! 천둥이 온 세상에 울리기 몇 초 전, 눈 깜짝할 사이에 미리 예고하는 손님이 있다. 번쩍번쩍 하늘을 가르는 번개다. 과학을 몰랐던 아주 오래 전 과거 사람들은 신이 노여워하는 것이라 생각해 번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번개가 왜 치는지 알게 된 뒤 인류는 번개를 하나의 기상 현상으로, 나아가 어마어마한 전기 에너지로 인식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번개가 일어나는 현상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백정민 UNIST 신소재공학부 교수팀도 번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순식간에 전기를 다량 생산하는 나노발전기를 개발했다.
스마트센서 움직이는 힘 만드는 인공번개
백 교수팀은 나노 소재를 기반으로 정전기 현상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거나, 빛을 이용해 물을 분해하는 연구를 주로 하고 있다.
최근 웨어러블 소자와 사물인터넷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백 교수는 이들에 전기를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주변의 에너지원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떠올렸다”면서 “특히 정전기 현상을 이용한 나노발전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번개구름을 흉내 내서 만든 ‘고효율 나노발전기’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번개가 치는 구름에서 전하가 분리되는 원리였다. 번개 구름 안에는 수없이 많은 물 입자가 들어 있는데, 대개 수증기나 얼음입자 형태다. 얼음 입자들끼리 마찰을 일으키면서 양전하(+)와 음전하(-)가 생기고, 전하 간 무게 차이로 인해 구름의 위아래가 양전하와 음전하를 띠게 된다. 임계 전하 농도에 다다르면 순간적으로 출력이 매우 높은 번개가 발생한다.
백 교수팀은 이를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나노발전기를 만들었다. 번개 구름 속 얼음입자들이 부딪치는 것처럼 금속과 유전체(dielectric)를 서로 마찰시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연구팀은 나노발전기에 꼭 들어가야 하는 부품인 유전체를 기존의 박막이 아닌, 신축성이 매우 높은 스펀지 구조로 만들어 효율을 크게 증가시켰다.
또 기존 나노발전기의 내부가 2개 층으로 나뉜 것과 달리, 연구팀은 그 사이에 금속층(접지층)을 넣어 효율을 높였다. 구멍이 셀 수 없이 많이 뚫린 실리콘 스펀지에 압력을 가하면 전기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접지층을 넣어 발전기 내에서 전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든 셈이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 10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고효율 나노발전기로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성공했다. 백 교수는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나노발전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서 “이를 위해 실제 응용성에 큰 비중을 두고, 주변 환경에서 충전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까운 미래에는 스마트기기를 들고만 다녀도 충전이 저절로 될 것이다. 그는 또 “자연에서 일어나는 대전현상을 모방해 독창적인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발전기를 제작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실 人사이드] “능동적인 사람이 돼라”
백정민 교수는 제자들에게 딱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지도교수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연구하다보면 연구실도 부강해지고 자기 계발도 된다. 다른 하나는 선후배 간의 우애다. 다른 이가 잘 돼야 나도 잘 된다는 생각만이 좋은 팀워크를 만든다는 생각에서다.
이정아 과학동아 기자 | zzunga@donga.com
<본 기사는 2017년 6월 ‘과학동아’에 “[과학동아][Career] 번개 구름 흉내 낸 나노발전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