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이미 만들어진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고, 더욱 더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을 흉내 낸 끈끈이나 연꽃잎을 흉내 낸 방수 페인트가 널리 알려져 있다.
자연을 흉내 내면 기능적인 면에서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쓸모없는 부분을 생략할 수도 있다. 김남훈 UNIST 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는 이런 예로 ‘사람의 뼈’를 떠올렸다. 그는 뼈처럼 핵심 구조만 간직한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3D 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다.
뼈처럼 구멍 내 효율적인 공간 활용
3D 프린터를 이용해 어떻게 사람의 뼈를 흉내 낸다는 것일까. 김 교수팀은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제품이 외부로부터 받는 부위별 힘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그 중 하나가 작업용 차량의 좌석이다. 시트나 등받이 외에도 좌석을 지탱하는 하단 부분이 둔탁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좌석의 모든 부위가 사람의 체중을 싣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구팀은 물리적으로 필요 없는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해 사람의 뼈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모양으로 ‘살빼기’를 했다.
하지만 기존의 생산기술로는 이 설계도대로 제품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현재 공장에서는 재료를 기계로 깎거나 틀에 재료를 넣고 굳히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제품 디자인이 복잡할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러 부분으로 각자 만들어 조립을 해야 해 번거롭다.
김 교수는 3D 프린터로 해결했다. 그는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제조 단계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능적, 구조적으로 쓸모없는 부분을 굳이 만들지 않아도 돼 재료를 아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설계 단계에서부터 3D 프린팅의 특성을 고려해 디자인하고 제품을 찍어내는 것을 DfAM(Design for Additive Manufacturing, 적층제조 디자인)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DfAM을 이용해 여러 제품을 만들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전기자전거다. 전기자전거의 몸체를 3D로 설계할 때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부분을 생략하고 3D 프린터로 찍어냈다. 구멍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외부에도 나 있지만 안쪽에도 스펀지처럼 나 있다. 물리적인 힘을 받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생략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자전거 본체에는 배터리를 붙이거나 휴대용 물병을 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재료로 꽉 차 있던 공간을 뚫어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미 해외에서는 DfAM을 이용한 3D 프린팅 기술을 우주항공이나 의료 분야에 활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국내 주력 산업인 자동차와 조선, 전자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실 人사이드] “과정을 즐겨라”
김남훈 교수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이야기다. 연구를 하다보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려면 재미와 흥이 있어야 한다. 특히 김 교수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설계 단계부터 제작 과정까지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많다.
이정아 과학동아 기자 | zzunga@donga.com
<본 기사는 2017년 7월 ‘과학동아’에 “[Career] ‘비움의 미학’ 실현하는 3D 프린팅”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