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回航)’ 사건에 대해 검찰이 2일 징역형을 구형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긴 했지만 등 돌린 여론의 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확인시켜주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조직의 위기 대응 방식에 관해서도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사건 초기부터 대한항공의 위기 대응 방식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위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 진화 ‘타이밍’을 놓쳤고, 뒤늦은 사과와 후속 조치마저 ‘진정성’을 의심받으면서 여론의 공분(公憤)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수시로 위기 대응 상황에 노출되곤 하는 일선 홍보책임자로선 식은땀이 절로 나오는 뼈아픈 지적들이다.
대한항공의 위기 대응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언론 보도가 나온 뒤 15시간이 지나서야 첫 사과문이 발표됐다. 비난 여론이 한참 들끓은 뒤였다. 초기 진화의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사과문 내용도 논란을 일으켰다. 형식만 사과문일 뿐 책임을 사무장 탓으로 돌리는 회피성 해명자료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때부터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사과의 주체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사건 당사자인 조 전 부사장은 부친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죄송하다”며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나서야 뒤이어 직접 사과에 나섰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 여론은 재벌가의 뿌리 깊은 ‘슈퍼 갑’ 의식이 이번 사건의 배경이란 인식이 확산됐고, 이후 등 돌린 여론은 백약이 무효한 지경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과 대비해 지난해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코오롱그룹의 위기 대응 방식을 참고 사례로 꼽는다. 당시 사고는 밤 9시15분쯤 발생했는데 코오롱그룹 이웅렬 회장은 곧장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고, 다음날 동트기 전인 새벽 6시쯤 비장한 어조로 사죄문을 직접 발표했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 하겠다’는 요지였다. 사고 발생 9시간 만에 그룹 오너가 무한 책임을 약속했고, 현장에서 사고 수습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진정성을 보였다. 사고 규모에 비하면 당시 여론의 뭇매가 약한 편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땅콩 회항’ 사태를 보면서 일선의 홍보책임자들 사이엔 가시지 않는 의문점이 하나 있다. 대한항공이라면 수많은 고객 리스크(risk)를 가진 조직이고, 평소 다양하고 체계적인 대응 방식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서는 위기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뒤늦은 해명성 사과문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왜 그랬을까?
유일한 단서는 사건 초기 언론보도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다. ‘대한항공 내부에서 발표문 내용에 대해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수뇌부 쪽에서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였다. 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그룹 내부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너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유·무형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소위 ‘과잉충성 그룹’이다. 이들은 사건의 본질이 ‘기내 서비스 매뉴얼’ 문제가 아니라 ‘재벌가의 슈퍼갑 횡포’에 대한 여론의 반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다. 그 같은 배경에는 평상시 오너 일가의 권위적 리더십과 상향식 소통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직의 위기를 관리하는 책임자들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뼈아픈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김학찬 UNIST 홍보대외협력팀장
<본 칼럼은 2015년 2월 3일 경상일보 19면에 ‘땅콩 회항 사건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