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첫 소절은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이다. 가사와 같이 20대를 훌쩍 보내고,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30대가 지나고 이제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된다.
30대 중반 이후에는 가끔 서류에 나이를 기재할 때 외에는 평소에 내 나이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가 덜컥 마흔 즈음이 되니까 나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불혹(不惑)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세상사에 휘둘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사소한 일로 고민을 하고 짜증도 많이 나는 것으로 봐서 ‘불혹’이라는 말이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평생 ‘불혹’은 나와 인연이 없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릴 때에는 내가 나이를 먹으면 그야말로 어른스럽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나이를 먹고 보니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이 늘어나긴 했어도 내가 생각하던 어른으로서의 지혜가 생긴 것 같지도 않고,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참을성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단지, 주변 상황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짐에 따라 적절히 행동하고, 그러한 삶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나의 20대와 30대는 딱히 구별되지 않는다. 대학 4년, 대학원 6년, 박사 후 연수 4년, 이렇게 14년을 대학에 있다가 훌쩍 30대 초반이 되었고, 조교수로 대학에 부임해서 6년이 지났으니 지난 20년 동안 대학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사과정 중에 병역특례(전문연구요원)로 군 복무를 마쳤으니, 육군훈련소(논산) 기초군사훈련 한 달을 제외하고는 대학을 떠난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늘 학생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나이가 많아 봐야 30대 초반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나이 먹는 것을 잘 모르겠다. 예전 박사과정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항상 학교에 가고, 논문 읽고, 발표자료 만들고, 보고서 작성하는 생활은 1999년 이후로 변한 것이 없다. 그나마 다른 것은 예전보다 강의를 많이 하고, 후배들이 아닌 제자들을 가르치고, 행정업무와 외부회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제주공항에서 옆자리에 앉은 노신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10년 뒤에는 여든하나다. 사람이 마음도 같이 따라 늙어주면 좋은데 마음은 늘 젊어서… 30~40대에는 시간이 너무 안 갔는데 지금은 너무 빨라.” 매우 인상적이라서 즉석에서 메모한 내용이다. 어르신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인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의 전공선택과 대학원 입학상담을 하다 보면 내 20~30대를 돌이켜보며 조언을 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대학생활을 했고, 대학원에서 어떻게 석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연구와 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전공선택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나의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내 20~30대는 이렇게 과거가 되고 있지만, 그 기억들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과학자로서의 진로선택과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찌 불혹에 미치지 못함을 한탄할 것인가.
최성득 UNIST 교수·도시환경공학부
<본 칼럼은 2014년 12월 30일 울산매일 15면에 ‘[열린 생각] 마흔 즈음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