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중인 유니스트에서 학생기숙사 사감장으로 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을 관장하고 있다. 지금의 대학생 삶을 내가 대학생 시절이던 20년도 넘은 과거와 단순 비교 자체는 어불성설이다. 내가 다녔던 곳은 종합대학으로 그 환경과 역사, 그리고 인적구성 역시 유니스트와 다르다. 1990년대 초반 나는 대학생이었으나 이제는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다. 이처럼 시공간적 현실의 불합치와 사회적 지위 변화는 지극히 당연하며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학사회, 특히 학생과 교수 간 신뢰의 문제는 과거와 비교해서 굉장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초반 대학가는 여전히 강한 ‘운동권 성향’의 학생회가 있었다. 매 학기 초에는 정규행사처럼 캠퍼스에서 대자보, 구호, 운동가요, 최루가스 등을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운좋게 장학생으로 등록금을 내지 않았던 나로서도 등록금 문제에는 큰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등록금 때문에 동기들이 휴학하고, 군대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광경인 듯 하다. 지금 대학가의 큰 화두인 반값 등록금의 그 반값에도 훨씬 못미치는 당시 등록금이었지만 부모의 허리를 휘게하는 등록금 인상과 인하를 놓고 학생과 대학 간에는 마찰도 많았다.
우리 유니스트처럼 일정한 학점을 넘으면 등록금을 면제받는 대학에 내가 다니고 있었다면 얼마나 다른 상황을 맛보았을까! 그러한 마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학생회와 대학 간의 등록금 협상과정이다. 협상과정에서 각자 회의록을 작성하여 그 내용을 토대로 각자의 입장을 일반 학생들에게 전달하였다. 학생회의 대자보이든 대학의 공고문이든 그것이 게시판에 붙여질 때마다, 보면서 서로가 협상과정에서 기록한 각자의 회의록에 충실하였다라는 기억이 든다.
회의에서 ‘오프 더 레코드’, 즉 회의석에 앉아있는 사람들끼리만 알고 넘어가기로 합의한 사항들도 있었겠지만, 누가 누구 모르게 상대방의 말을 인용없이, 삭제 또는 수정하여 게시하여 이슈가 커졌던 기억은 없다. 회의 당시 나왔던 ‘말’을 글로 옮겨 회의록을 작성하고, 이 회의록을 가지고 각자의 주장을 ‘지면화’하는 것 자체에 이미 ‘의미의 왜곡 가능성’을 담고 있음을 서로가 주지했을 것이라 본다.
등록금 인상과 인하를 놓고 각종 자료와 지표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논쟁은 있었으나, 누가 누구의 회의록이 맞냐 틀리냐의 논쟁은 드물었다. 자기가 만드는 기록에 대한 신의 문제는 자신의 공적 지위가 유지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다. 20년을 훌쩍 넘은 2014년, 학생기숙사 사감장으로서 학생회 대표와 몇 차례 회의를 가졌다.
학생회가 학생기숙사 사감실의 업무처리에 관해 그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의견 개진을 한 것으로 파악되었고 학생회 대표도 이를 인정했다. 그 후 학생회 집행부 학생 한 명이 학생기숙사 사감실을 방문하여 직원에게 기숙사 업무에 관한 질의를 할 때, 그 직원이 무언가 이상하여 ‘녹취를 하고 있는 것이냐’라고 묻자 그 학생은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대화 상대자가 동의하지 않았고 더욱이 미리 숙지하지도 않은 녹취를 그 학생은 대화의 증거자료로 활용코자 했었을 것이리라.
그 즈음에 얼마전 학생회 대표와의 면담 녹취록이 학생회 SNS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면담 당시 녹취를 상호간 숙지 및 합의하고 진행한 것이었으나, 녹취록을 상호교환하여 그 녹취의 성실성과 진실성을 상대방인 나에게 확인하지도 않은채 공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긴다 하더라도, 말할 당시 화자의 톤과 리듬 등에서 청자는 글로 옮겨 적으며 다양한 해석을 만들어 낸다. 글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나 동시에 말이 갖는 의미의 생동감을 변질시킨다는 플라톤의 고견을 참조할만 하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데 무척 중요하다. 여기에 그 어떠한 경우라도 의미의 왜곡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것 아닐까?
성민규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4년 12월 23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 신뢰의 상실과 복원’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