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단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복지국가는 우리가 꼭 지향해야 할 사회의 방향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은 동의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지국가라는 단어처럼 사람들마다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개념도 드물다. 결국엔 돈이 문제의 핵심이다.
국가가 개인의 복지를 위하여 어디까지 공공예산을 지원해야 적합한가에 대하여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것은 국민의 소득이 증가하고 사회가 선진국에 가까이 갈수록 공공이 책임지게 되는 복지의 개념과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교통이라고 하면 자동차, 고속도로와 같은 교통수단 혹은 교통수요분석처럼 전문적인 내용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넓게 본다면 사람들이 서로 오고가는 행위가 결국 교통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장소에 안전하고 빠르고 쾌적하게 오고가려면 비용이 발생한다. 잘사는 사람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갈 수 있지만, 가난한 이들은 더 오래 걸리는 길은 불편하게 가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늘 그렇듯 교통에 있어서도 소득에 따른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 약간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는 교통복지는 공공이 이러한 차이를 줄여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정책 및 지원이다. 즉 이 사회의 일원이라면 노인, 장애인, 가난한 사람 누구든지 최소한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이동권’이 있고 이를 공공이 지원해 주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교통복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동제약이 있다. 신체적 또는 경제적인 문제로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 역시 최소한의 이동을 위한 기본 권리를 갖는다.
교통복지에 대한 요구는 인구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분명히 증가할 전망이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노인층이 증가하면 일단 신체적 능력 감퇴에 따른 이동제약 계층이 증가한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의 제약이 아니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갈 수 있는 이동거리가 짧아진다.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빈곤률이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노인비율 증가는 곧 소득 문제에 따른 이동취약계층 증가를 의미한다.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통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머문다.
사실 교통복지는 온전히 박애주의나 평등권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교통, 즉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은 그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쉽게 원하는 장소에 모일 수 있으면, 도시의 상업적인 활력이 증가한다. 이는 곧 새로운 일자리 그리고 소득을 창출한다. 교통의 질이 개선됨에 따라 나타나는 부가적인 하지만 매우 중요한 사회적 가치이다. 결국 향후 증가하게 될 이동취약 문제에 대한 적절한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이동과 활력이 줄고, 도시의 경쟁력도 약화된다.
그렇다면 현재 울산의 교통복지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 2013년 부산발전연구원은 7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교통복지 현황에 대한 자체 평가를 수행하였다. 연구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울산의 교통복지는 7대 광역시 중 꽤나 압도적인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대중교통서비스, 여객시설, 보행시설 등 교통약자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을 중심으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그동안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울산이 교통약자와 이들을 위한 정책에 있어서 다른 도시들 보다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단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교통약자를 위한 정책 및 사업들이 깊은 고민없이 다른 도시들도 하고 있기 때문에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교통복지는 눈에 띄는 사업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 안전하고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는 시민들의 기본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공공이 보장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사업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기혁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1월 26일 울산매일 19면에 ‘우리 사회의 이동권과 교통복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