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영종대교에서 일어난 차량 106중 연쇄 추돌 사고가 자연재해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대비를 잘 했더라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인적재해였는지에 대해 아직까지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끝은 누구의 책임인지로 이어지겠지만, 지난 1월에 발생했던 중앙고속도로 43중 연쇄추돌, 2006년 10월 서해대교 29중 연쇄추돌 등 계속 되풀이되며 대형화되고 있는 양상을 지켜보면, 매일 자동차로 출근해야 하는 한 운전자로서 불안감이 크다. 더욱이 이번 사고는 과거 발생했던 서해대교 사고와 유사한 점이 많아 과연 우리 사회가 과거의 희생으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학습하는지 심한 자괴감을 던져 준다.
당시 블랙박스로 본 사고 영상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이 천만 다행일 정도로 아찔하다. 짙은 안개가 자욱한 다리 위에서 앞 차량의 꼬리도 보이지 않는 최악의 가시거리였으며, 순전히 감각에 의존하며 운전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딪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최초 사고 시각은 오전 9시40분, 결빙 없는 영상 3도의 기온으로, 목격자에 의하면 가시거리가 불과 5m 이내일 정도로 매우 짧았고, 안개가 구간 구간 짙게 껴 있어 1시간 이내에 100중 추돌사고로 이루어 졌다고 한다. 아마도 현장은 아비규환의 공포 자체였을 것이다. 더더구나 바다 위에 높게 떠 있어 오갈데 없는 다리 위가 아닌가.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는 과연 자연재해인가 인재인가. 짙은 안개가 먼저 끼어 있었으니, 사고의 일차적 책임을 안개에 물어야 하는가. 그 시간에 영종대교에는 왜 안개가 그토록 짙게 끼여 있었나. 그 시각 영종대교는 찬 겨울 아침이었으며, 바다 위로서 습도와 소금끼가 많고, 2월 들어 중국에서 빈번히 유입되는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안개가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조건을 충족했다. 실제 기상청 통계에 의하면, 영종·인천대교 등의 서해 앞바다는 월 평균 안개일수가 약 20일로, 지난 1월21일, 지난해 12월18일, 11월21일 등으로 빈번하게 일어났다. 영종대교에 안개가 그날 아침 끼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높았으며, 실제로도 기상청에서 서해상에 안개가 예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사고에서 안개는 무죄이고, 과거의 피해로부터 학습과 준비가 없는 우리 사회의 무감한 안전관리 시스템이 유죄이다. 차량의 성능 개선과 도로망 발달 등으로 운전자들은 점점 더 빠르게 운전하고 있으며, 때로는 악기상의 발생과 함께 치명적인 연쇄추돌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고 구미 선진국에서도 갈수록 심각해 지고 있는 추세다. 역대 최악의 교통사고로 기록되고 있는 2005년 핀란드의 300중 연쇄추돌사고는 폭설, 2009년 독일의 259중 연쇄추돌은 폭우가 원인이었다.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216중 연쇄추돌사고와 1997년 영국에서의 160중 추돌사고는 우리의 영종대교 사고와 같이 이른 아침 출근길에 발생한 짙은 안개가 촉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우, 폭설, 안개 등이 사고의 시작이지만, 앞의 사례들 모두 공통적으로 운전자 과속과 부주의가 어김없이 대형사고로 키운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종대교 사고 후에 행정기관과 도로관리 기관 등이 제시하는 여러 보완책들을 보면 많은 아쉬움이 있으며, 과연 이러한 대책들이 세월호 사고로 국민 모두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아 떠나지 않는 불안감을 재워 줄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교량 전구간 안개등 설치, 교량 진입차단설비, 감속 유도형 전광판, 실시간 기상정보 시스템, 안개 시정표시, 경광등 설치 등 과연 이러한 첨단장비와 스마트한 도로가 만능일까. 사고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것과 같이 구간 구간 급작스럽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를 이러한 첨단 시설들이 예고하고 막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나와 있는 인공위성을 포함한 어떠한 첨단 과학 장비도 국지적으로 발생하고 사라지는 안개를 실제 사람이 나가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히 잡아낼 수는 없다. 차라리 도로 관리 안전 인력을 증원하고 도로 순찰을 강화한다면, 급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부정확한 예보에 의지하기 보다는 도로상의 기상기후 정보를 장기간 관측하고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안전관리를 체계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남을 배려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 의식이 중요하다. 영종대교의 일출시간은 대략 새벽 7시 정도로 사고 발생 때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 만약 그 시각에 도로를 이용한 관리자가 운전자가 있어서, SNS 등으로 신속하게 도로상황을 전파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국민들이 원하는 대책은 첨단이 아니라 실제로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한 국가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 하는 지에 있다. 울산도 5월에 긴 다리가 해안 지역에 개통된다. 안전관리 인력 증원 등 우리 사회가 안전에 대해 보다 세밀하고 전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이명인 유니스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2월 23일 경상일보 18면에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자연재해인가 인재인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