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구조조정 이슈가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더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 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3%에서 2.6%로 하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은행, 한국경제연구원 등 모든 국제기구와 민간 연구기관들이 올해 한국경제가 2% 중반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기획재정부)만 3%대 성장이라는 정책 목표를 고수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여파와 세계경제 성장률 둔화 등 대내외적 여건을 고려하면 3%대 성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근 5년간 한국경제가 3%대 성장률을 달성한 것은 2011년과 2014년뿐이며, 나머지 3개년도에는 2%대 중반 성장에 그쳤다. KDI는 내년 경제성장률 또한 2.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바야흐로 저성장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울산 지역경제는 어떠한가? 최근 5년간 시도별 실질경제성장률 자료를 보면 울산은 2011년을 제외하고 모두 1~2%대 저성장에 그쳤으며 이는 전국 평균 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2015년에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 전반에 걸쳐 경기침체를 경험하였고,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업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공식적인 2015년 지역경제 지표가 발표돼야 알 수 있지만, 수년 간 지켜오던 1인당 개인소득 전국 1위 자리도 조만간 서울에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둔화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이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진전됨에 따라 우리나라 인구는 2030년경부터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이 되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잠재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해왔던 우리나라에서 저성장을 일상으로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이미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미래는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으며, 개별 지역과 도시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시계획적 관점에서 볼 때, 저성장 시대는 도시정책의 목표와 대상에 있어 큰 변화를 수반한다. 일례로 저성장은 일반적으로 주택 및 부동산에 대한 투자수요 감소로 나타나므로 새로운 도시 공간 개발보다는 기성 시가지와 공공인프라의 효과적인 관리가 강조된다. 신도시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최근 도시개발 기조 변화가 이를 반영한다. 노후 산업단지 관리나 빈집 등 주택재고 관리처럼 ‘관리’ 중심의 서비스와 기술의 중요성이 증대될 것이다. 많은 선진국 도시들은 저성장 시대에 경제적, 공간적 양극화 심화를 경험하였기에, 형평성을 담보할 수 있는 포용적인 커뮤니티 개발 또한 요구된다. 이와 같은 저성장 시대 도시정책은 대형 국책사업 유치나 기반시설 건설, 신산업단지 조성 등 고성장시대 개발 중심 정책에 비해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자칫 간과되기 쉬우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도시의 내실을 다지는 초석으로서 결코 소홀히 여겨선 안 된다.
최근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발간하는 <도시정보>지는 저성장시대 도시정책 특집을 다루면서 ‘성숙사회’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성숙사회는 장기불황과 저성장을 경험했던 일본에서 기존의 성장사회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널리 사용하는 용어로서, ‘대·내외적인 여건변화에 따라 성장이 둔화되는 시대에 남아있는 역량과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찾고 발전하는 사회’로 정의된다. 즉, 성장과 효율성, 생산자 중심이 아닌 지속가능성, 다양성, 공동체성, 삶의 질, 소비자가 중시되는 사회가 성숙사회이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울산도 저성장시대 도래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지한 정책적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김정섭 UNIST 교수 도시환경공학부
<본 칼럼은 2016년 5월 27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저성장시대, ‘성숙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할 때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