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3D프린팅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단숨에 온 세상의 화제가 된 미국기업 대표가 울산을 방문했다. 2014년 그 자동차가 공개되었을 때 미국 대통령이 직접 시승하는 바람에 유명세를 타 우리나라 언론도 떠들썩했고, 필자의 전공과 업력이 자동차인 탓에 주변으로부터 관련 문의가 많아 나름 상세히 찾아보았던 기업이다. 로컬모터스라는 그 기업의 대표가 울산시 관계자들과 함께 유니스트에 와서 강연도 하고 필자와 이야기도 나누었다. 현대자동차도, 삼성SDI도, 여러 언론 매체도 모두 주목했던 것은 3D프린팅이 자동차에까지 미치게 만든 엄청난 영향력과 미래 가능성이었다.
주목할만한 내용이고,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필자가 못내 아쉬웠던 것은, 모두가 현재 모습, 3D프린팅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자동차 생산이라는 물리적 성과에만 놀라워할 뿐, 정작 해당기업의 히스토리나, 그들이 설명하는 미래의 자동차디자인-생산-구매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3D프린터로 이제 차까지 만드는구나!”, “놀라운 걸!”, “어서 빨리 3D프린터 사업을 확장해서 이 시장을 선점해야겠다!”는 소위 주판알 튀기는 소리와 조급함만이 공간에 가득했다.
로컬모터스는 10여년된 미국의 작은 자동차업체다. 그럼 10년 전부터 그들이 3D 프린터를 이용한 자동차 생산 방식 연구에 매달려왔을까? 천만에! 그들은 GM이나 현대같은 대규모 메이커가 만들지 않는 차량, 개성이 강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차를 개발하고 만들어주는 회사다. 실제로 메뚜기처럼 점프가 되는 레저용 자동차나 특별한 디자인을 원하는 개별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자동차를 만들거나, 군사용 특수목적 자동차를 개발했다. 그들에게 3D프린팅은 사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그들의 생리에 적합한 생산수단에 불과한 것이고, 글로벌 사업화의 도구적 컨셉일 뿐이다. 사실 3D프린터라는 말은 이미 모델 제작 업계에서 사용한지 몇십년이 지난 RP(레피드프로토타입)머쉰을 지칭하는 대중적 단어에 불과하다. 더더욱 그들이 여태껏 개발하고 생산한 차량도 3D프린터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규모 제작방식으로 생산한 모델이다. 아직 디자인은 물론 안전도, 성능, 완성도가 터무니 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3D프린팅이라는 방법적 시도를 통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그들은 이제 전 세계로 3D프린터 공장을 확대해서 자사의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공장은 자사의 것이 아니라, 타 국가, 타 기업 3D프린터 공장과의 업무 제휴나 계약을 통해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자동차디자인과 설계파일을 로컬모터스에게 제공한다는 조건을 지키면, 그들의 3D프린팅 공장도 얼마든지 공유하게 한다는 그들의 미래 정책을 잘 들여다 보면 무언가 깨달음이 있지 않은가? 핵심은 3D프린터 공장이라는 생산 수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디자인과 설계의 자동차냐는 것, 바로 노하우가 중심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공장이 모자라서 사업이 안되는 기업이 있다면 정말 행복한 기업이 아닐 수 없다. 잘 팔리는 제품이 없어서, 즉 뛰어난 디자인이나 성능같은 히트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고, 공장이 문을 닫고 기업이 쇠퇴하는 것이다. 귀하디 귀한 차량용 대형 3D프린터 공장까지도 공유하겠다는 로컬모터스가 내세우는 필수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프린팅하고자 하는 차량의 설계파일을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하우, 즉 ‘디자인’과 ‘설계 역량’이다. 로컬모터스에게 배우고 함께하고 싶은 것은, 대기업이 손도 못대는 다품종 소량생산, 개별 고객의 취향에 맞추어 다양한 디자인의 차량을 즉각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세계를 재패하고자하는 그들의 창조성이지 3D프린팅 공장이 아니다. 3D프린팅보다 더 효율적인 생산방식이 나타난다면, 로컬모터스는 그 방식을 택할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수시로 스마트폰 기기 변경하듯이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울산에 온갖 종류의 3D프린터로 가득찬 공장이 빽빽해진다고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노하우 없는 규모의 산업은 곧 중국에게 추월당할 것이 뻔할 텐데 말이다. 창조를 창조하는 노하우를 보자. 무엇이 중요한가?
정연우 UNIST 교수·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3월 16일 경상일보 18면에 ‘3D프린터, 자동차와 창조경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