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의 기준이 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으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에서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는 해결됐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입고 먹는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음에도 주거는 여전히 서민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경제적 부담이며 가계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저성장, 저금리가 고착화되어 전세에서 월세로 임대차 시장의 구조가 급속히 변화되면서 내 집이 없는 서민들은 임대차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보증금을 올려주거나, 월세 전환에 따른 주거비 지출 증가를 감내해야 한다. 가계의 경제적 수준은 동일함에도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할 때도 많다. 내 집을 가지고 있는 소유자들도 높은 주택가격을 부담하기 위한 과도한 주택담보대출을 갚느라 가처분소득이 줄고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한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이라도 하게 되면, 당장 대출금을 갚지 못하여 채무불이행과 가계 파산의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처럼 전세난민,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가 익숙해진 현실 속에서 주거문제 해결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35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유엔 헤비타트는 적절한 주거에 살 수 있는 권리(The Right to Adequate Housing)를 인간의 기본 인권으로 규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제정되어 시행 중인 ‘주거기본법’에서 ‘국민은 관계 법령 및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물리적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처음으로 주거권을 공식적으로 법에 명시하게 됐다. 즉, 인간 생활의 기본요소 중 하나인 ‘주거’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하므로 공공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주거문제 대응을 위한 울산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자체의 주택정책 수립의 법적 근거가 지난해 제정된 ‘주거기본법’으로 바뀌었고, 중앙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도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울산시는 여전히 주택공급 중심의 ‘주택법’에 기반한 ‘울산광역시 주택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 3월 ‘부산광역시 주거기본조례’를 제정해 주거문제를 대응하고 있는 부산시와는 대조적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노숙인, 복지시설생활자, 불안정거처·비주택(고시원, 여관, 판잣집, 비닐하우스) 거주자, 최저주거기준 미달주택 거주가구 등 주거취약계층이 전국 가구의 9.7%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울산에 어떤 유형의 주거취약계층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고, 이들에게 맞춤형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적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조선업 경기침체로 동구 원룸촌을 중심으로 빈집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는데 이에 대한 울산시의 조사와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가계의 경제적 취약성은 소득 감소와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져 주거취약성을 높인다. 따라서 경제위기 때에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경제정책과 더불어 주거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주택정책 시행이 병행돼야 한다. 기존의 중앙정부 주도의 영구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행복주택 등의 공공주택 공급만으로는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으므로, 수요자 입장에서 효과적인 지원정책들이 개발돼야 한다. 최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실태조사와 정책연구를 시작한 대구시와 서울시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수도 있다. 울산의 지역경제, 주택시장 여건에 부합하는 울산형 주거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들을 발굴하여 시민들의 삶의 기본요소이자 기본권인 주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김정섭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6월 27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불황기, 울산형 주거취약계층 지원 프로그램 발굴 필요’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