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급감속 1회, 급가속 0회. 이번 주 총 운행 거리 547.2㎞, 운행 시간 7시간29분, 내 운전 지수는 49점. 이번 주는 유난히 점수가 형편없다. 내 운전 코치로 등록된 남편에게 핀잔을 들을 지경이다. 이럴 때는 나이 든 딸에게 아직도 안전하게 운전하라고 잔소리하시는 친정아버지를 운전 코치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다.
‘드라이빙 코치(driving coach)’ 서비스가 제공하는 나의 자동차 운행 기록이다. 운전자의 운행 경로와 운행 패턴 정보를 운전 코치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부모가 운전 코치로 등록된 미국 10대 운전자들이 이 서비스를 두려워한단다.
지난해 가을부터 부산-울산을 출퇴근했다. 거리로는 대략 40㎞, 매일 꼬박 1시간30분씩 운전대 잡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궁리했다. 10년간 내 연구 주제 목록에서 지워진 적이 없는 ‘운전자 행동’에 대한 탐색적 연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연구 장비를 동원해서 내 운전 행동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안경형 시선 추적 장치를 쓰고 운전대를 잡은 날은 날씨와 시계(vision), 도로 상태, 운전자인 내 상태에 대한 구술부터 시작한다. 운전 중 라디오를 듣거나 내비게이션을 확인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행동이 운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때 내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기록된 데이터로 되짚어본다. 익숙한 길을 갈 때와 낯선 길을 갈 때 시선의 이동이나 속도, 가속, 감속 패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살펴본다.
하루하루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일상도 기록하고 수집해놓으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잘 모르던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것처럼, 데이터를 축적해보니 흥미로운 패턴이 보였다. 나는 운전 중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내가 보는 세상도 기울어져 있다.
만보계로부터 시작된 일상적인 ‘활동 기록’의 역사는 내가 먹고 마시는 음식, 나의 신체 상태, 활동, 나아가 기분과 생각을 기록하는 일로 확장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이 보편화되고 센서와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웨어러블 장치들이 등장하면서 기록의 대상 역시 다양해졌다.
운전자 행태도 손쉽게 기록 가능한 활동 중 하나가 되었고, 자동차 보험 업계에서 이 기술을 발 빠르게 활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보험사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한 일반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운전 행태 정보를 수집해 보험료 책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활동 기록’이 ‘통제 수단’이 될 수도
인간 활동에 대한 기록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계량화되고 정량화된 나에 대한 정보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인간의 활동에 대한 계량과 기록은 프레더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의 원칙’에서 기본으로 삼는 관리 도구이다. 인간의 활동을 객관화해 수치를 매기면 효과성과 효율성을 평가할 수 있고, 나아가 이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와 개선의 주체가 내가 아닐 때에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역사적으로 작업 관리는 대체로 회사 측의 활동이었고 노동력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개인의 영역에서는 ‘스마트’한 생활습관인 ‘활동 기록’이 산업 현장에서는 ‘통제 수단’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 활동 기록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나를 평가하는 도구가 되고, 내 행동은 개선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인간공학자로서 내가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기술의 사용 목적이다.
그래도 초보 운전자가 오늘 어떻게 운전하고 돌아다녔는지를 부모님이나 멘토에게 고자질하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임지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인간공학
<본 칼럼은 2016년 6월 3일 시사IN 454호에 ‘내 ‘활동 기록’이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