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 필라델피아 길가에서 로봇 한 대가 처참하게 망가진 채로 발견되었다. 사람도 동물도 아닌 로봇이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로 길가에서 발견된 일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로봇의 이름은 히치봇(HitchBOT)이다.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이 로봇이 하는 일이란 히치하이킹을 통해 정해진 목적지까지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다. 히치봇은 2014년 여름 히치하이킹 열아홉 번으로 캐나다 여행에 성공했고, 겨울에는 무사히 독일을 여행했지만, 2015년 여름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왜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는 로봇에게 인간이 폭력적인 행동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캐나다와 독일에서는 인간의 도움으로 문제없이 여행을 했던 로봇이 왜 미국에서는 폭력의 대상이 되었을까? 혹자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로봇에 대해 적개심을 품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른 이들은 오래전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관찰된 반달리즘(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의 발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로봇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로봇과 상호작용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런 인간을 위해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로봇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만들어진다. 로봇은 주로 인간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고, 지시받은 과업을 수행하고, 결과를 인간에게 보고한다. 기계와 의사소통하는 인간의 언어나 동작은 대개 명령형이고 지시형이다. 기계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인간의 언어와 행동을 이해하고, 기계와 인간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시대가 오고 있지만, 우리는 기계에게 부탁하거나 존댓말을 하지는 않는다.
로봇 관리자에 찬성하나요?
기계는 감정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상대인 기계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주고, 이러한 인식이 행동에도 반영된다. 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 혹은 로봇이 내 업무 관리자가 되는 상황에 대하여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로봇은 감정적이지 않아서 나를 공정하게 대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로봇 관리자들에게 인간 노동자들은 경어체를 사용할까?
로봇이 인간과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설계되는가는 결국 로봇을 인식하고 상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번 학기 우리 학교 인간공학 전공 학생 중 일부가 아동 크기의 휴먼 로봇(휴머노이드)으로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로봇의 말투와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을 어떻게 디자인하면 상대방인 사람이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지, 로봇이 어떤 목소리와 말투로 부탁을 했을 때 사람들이 개인정보를 더 쉽게 공유하는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사회의 인권 수준을 보려면 그 사회에서 동물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라고 했다. 앞으로는 로봇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가 한 사회의 수준을 나타내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기억할 점은, 인간이 로봇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인간이 로봇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상호작용을 설계하는 일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공학의 한 분야가 될 것이다.
임지현 울산과학기술원 교수·인간공학
<본 칼럼은 2016년 6월 24일 시사IN 457호에 ‘그 미국인은 왜 히치봇을 부수었을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