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브렉시트,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이로써 영국은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후 43년 만에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의 EU탈퇴는 국제사회 전반에 어떤 파장을 야기할 지 현재로서는 예측 불허다. 한편 미국에서는 그 동안 온갖 막말파문을 일으켰던 도널드 트럼프가 전문가들의 초기 예상을 뒤엎고 공화당의 공식 대선후보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예상을 뒤엎는 참패를 당했다. 세 가지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성난 민심을 잘 못 읽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난 민심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1970년대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K. Galbraith)교수는 그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에서 ‘과거처럼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경제이론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전통적 이론으로 예측하기 힘든 당시 오일쇼크 시대를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00년대 후반, 우리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만났다.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해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불안감을 초래했다. 지난 금융위기는 인간의 ‘탐욕’이 문제였다. 신자유주의 아래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탐욕으로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그 후 금융위기는 봉합됐으나 아직 대부분의 국가들이 저성장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 트럼프 현상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우리나라 집권당의 참패의 근저에는 모두 ‘양극화’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깔려 있다. 불평등으로 인한 취약계층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먼저 소득의 양극화를 살펴보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발간한 ‘저소득 불균형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2년도에 소득 1% 상위그룹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17.9%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영국(12.7%), 한국은 12.2%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위 10% 소득은 한국이 45%로 미국(48%)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기득권의 승자독식 현상이 빠르게 한국의 소득격차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양극화는 단지 소득 불균형에 그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세대 간의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는 지금 창조경제하에 제조업의 고도화, 서비스산업의 육성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사회에 만연돼 있는 양극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양극화 문제는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시조 아담스미스는 지금과 같은 이기적 자본주의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자본주의는 그가 이미 <도덕감정론>에서 제시한 동정(Sympathy), 즉 배려가 깔려 있다. 지난 금융위기처럼 인간의 탐욕이 자제되지 않고 자본주의가 배려를 잃으면 시장경제는 실패한다. 양극화로 초래된 지금의 불확실성의 시대는 갤브레이스의 말처럼 이제 어떠한 경제이론도 우리에게 확신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제도나 이론보다 인간성의 회복이 더 중요하다.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도덕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선비정신’이 강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짧은 자본주의 역사 아래 압축성장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이기적으로 변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상부상조’정신으로 지금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극복해야겠다.
울산도 제조업의 고도화, 서비스화로 경제의 재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며칠 전 취임 2주년을 맞은 김기현 울산시장도 ‘품격 있고 따뜻한 창조도시 울산’의 건설을 재천명했다.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울산경제가 재부흥하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경제’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하게 느껴진다.
정구열 유니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본 칼럼은 2016년 7월 13일 경상일보 19면에 ‘[정구열칼럼]신(新) 불확실성의 시대’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