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창업 혹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중심 단어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교육하고 학생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산업의 경기둔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같은 대외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많은 수의 학생들이 창업을 졸업 후 진로의 하나로 선택하는 경향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기업가 정신’ 관련 수업에서 학생들이 가장 처음, 그리고 크게 느끼는 어려움 중에 하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의 저자 스티븐 존슨(Steven Johnson)은 혁신을 위한 조건으로 인접가능성, 유동적 네트워크, 느린 예감, 뜻밖의 발견, 실수, 굴절적응, 플랫폼 등 7가지의 키워드를 소개했다. 그 7가지 키워드의 기저에 스티븐 존슨은 ‘커피하우스’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커피하우스’ 모델이 18세기 영국의 계몽주의의 발전, 그리고 1920년대 모더니즘 과정에서의 다양한 문화적 혁신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커피하우스’ 모델은 열린 환경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커피나 홍차를 마시면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즉 이러한 다양한 의견의 융합과 열띤 토론 과정을 통해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커피하우스’ 모델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그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공간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의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하드웨어적인 공간의 의미와 더불어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소프트웨어적인 공간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샌마태오(San Mateo)에는 Tim Draper가 설립한 ‘Hero city’가 있다. 오래된 백화점이었던 건물을 Tim Draper가 매입해 조성한 이 곳은 창업과 관련된 생태계가 집적화돼 있는 공간이다. 1층의 넓은 열린 공간은 창업자들이 활용을 하고, 2층의 공간들은 투자자들이, 그리고 지하에는 인큐베이터가 한꺼번에 모여 있다. 또한 맞은편에는 Draper University와 함께 숙소까지 제공하고 있다. ‘영웅’이 탄생했으면 한다는 의미에서 ‘Hero city’라는 이름을 지었고, 한쪽 벽면에는 슈퍼영웅들의 그림이 가득한 아주 독특한 느낌의 공간이다. 이곳의 독특한 하드웨어적 공간과 더불어 문을 열자마자 볼 수 있는 건 여러 창업자, 투자자들이 열정과 더불어 자신의 일을 즐기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 대학에서도 코워킹 스페이스와 같은 열린 공간을 제공해 학생들로 하여금 ‘훌륭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적 공간 외 소프트웨어적인 공간의 모습, 즉 콘텐츠를 생성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적 부분에서는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하드웨어적인 공간에서 일반적인 회사의 모습은 높은 파티션으로 상호간의 대화가 차단돼 있고, 직장 상사의 방은 항상 닫혀 있든지 비서를 통해서만 직접 대면할 수 있다. 또한 각 하부 조직들 간에서 상대평가로 인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학생들 역시 그동안 경쟁위주의 입시체계에서 공유보다는 경쟁에 익숙하다보니, 열린 공간을 제공하더라도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내부적 공간을 만들고, 다른 학생들과의 공유를 꺼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상호간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토론하는 ‘훌륭한’ 아이디어 생성의 조건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자원만 있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하드웨어적 공간과 달리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 문화, 분위기의 형성은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실리콘밸리가 가진 강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형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단순히 외형적 공간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그 안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적 공간의 형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인 것이다.
강광욱 UNIST 경영학부 교수 기술창업교육센터장
<본 칼럼은 2016년 7월 18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훌륭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 공간의 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