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벨 화학상의 영광은 유전체(게놈) 보존 기작인 DNA 복구 과정에서 기초 연구 성과를 창출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토마스 린달, 폴 모드리치, 아지즈 산자르 교수다.
DNA는 생명체를 규정짓는 청사진과 같다. 세포 내·외부 요인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복구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염기절제 복구, 틀린 짝 복구, 뉴클레오티드 절제 복구 등이다. 세 명의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이러한 복구와 관련된 단백질을 순수 정제해 내는 성과를 거뒀다.
지구 생명체는 대부분 DNA 내부에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DNA는 네 개의 알파벳인 A(Adenine), C(Cytosine), G(Guanine), T(Thymine)로 이뤄져 있다. 이 알파벳의 조합을 이용, 각종 단백질과 RNA를 만들어 생명 현상을 이끌어 간다.
DNA의 유전 정보는 문제없이 유지돼야 하고, 세포 분열이나 분화 등 과정을 위해 복제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명체 DNA는 끊임없이 세포 대사의 부산물이나 외부 환경 요인에 의해 공격을 받고, 문제도 발생한다.
하지만 생명체는 이러한 문제를 억제하고 생명 활동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갖추고 있다. 유전체 정보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안전 장치로는 유전체 복제(Replication), 문제가 생기는 것을 세포 내에 알리는 기작(Response), 문제 복구(Repair), 재조합(Recombination)이다.
이 네 개의 R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돌연변이가 증가하고, 암이나 노화 같은 질환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틀린 짝 복구 과정에 문제가 생긴 환자군은 DNA 복제 과정 도중에 여러 돌연변이가 생기고, 그 결과 40세 정도에서는 대장암 발생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또 상동염색체 재조합에 문제가 생기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짙어진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상동염색체 재조합 복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자외선이나 방사능 등에 많이 노출되면 DNA 복구 과정에 문제가 생겨 피부암이나 백혈병 등 질환을 유발하는 사례도 관찰되고 있다.
요약하면 유전체 정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기작을 이해하고, 개인의 유전체 항상성 유지에 대한 차이를 알 수 있다면 암 발생이나 노화 등을 늦출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또 DNA 복제, 복구, 재조합, 손상 반응 과정을 정확히 이해하면 인류 진화 과정에서 유전체 변화가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에 관한 기초 지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항상성연구단은 지금까지 알려진 DNA 복제, 복구, 재조합, 손상 반응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한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기작을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암 치료와 노화 억제 방법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단계를 넘어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노화 관련 질병, 특히 암 발생이 계속 느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대한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화와 암의 기초 연구인 DNA 복제, 복구, 재조합, 손상 반응 과정 연구는 우리나라를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인류를 포함한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명경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특훈교수 kjmyung@unist.ac.kr
<본 칼럼은 2016년 9월 12일 전자신문 26면에 ‘[기고]유전체 항상성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