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물류대란이 일어났다. 세계 주요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을 거절했다. 한진해운에 화물 운송을 맡긴 수출입업체들은 궁지에 몰렸다. 정부도 국내 1위의 해운사를 법정관리로 보내기 전 사전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정부는 미흡한 자구계획으로 법정관리를 초래한 회사 측의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를 비난했다. 이번 사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돼 나갈 것이다. 그러나 개인기업의 몰락으로 우리나라가 혹독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번 한진해운 사태는 금융위기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 해운사들은 호황으로 시세보다 몇 배 높게 선주와 장기 용선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의 장기 불황으로 물량이 감소하자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경기 사이클에 민감한 산업에서 수익·비용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호황기 지속을 전제로 경영계획을 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비전문가적인 의사결정으로 부도를 초래하고 국가기간 산업인 물류인프라를 훼손시킨 최고경영진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사태 이면에는 한국의 잘못된 기업승계 관행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소위 한국적 ‘금수저 승계’가 한진해운 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
한진해운은 2002년 창업주 조중훈 회장의 타계 후 3남인 조수호 회장으로 승계됐다. 조회장이 2006년 사망함에 따라 그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에게로 경영권이 승계됐다. 최 회장은 지난달 국회 청문회에서 답변한대로 “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던” 비전문 경영인이었다. 세계 7위 해운사의 최고경영자가 하루아침에 비전문가인 가족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 후 최 전 회장은 금융출신 CEO를 영입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해운업에 비전문가들이 최고 의사결정자가 됐고,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
오너경영(가족 소유경영)과 전문인 경영은 각기 장단점이 있다. 오너경영은 한국재벌의 성공요인으로도 꼽힌다. 때로는 과감한 기업가정신, 빠른 의사결정,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견제장치가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가족기업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폭스바겐, 세계적 자동차 부품회사 보슈, 미국의 월마트, 포드자동차, 일본의 도요타도 모두 가족기업에 해당된다. 독일은 특히 가족기업이 많은 나라다. 이러한 가족기업들이 경영노하우와 기술력을 자녀세대로 계승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히든 챔피언을 키웠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들의 후계자는 소유권만으로 경영을 승계하지는 않는다. 혹독한 경영승계 훈련을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 가족기업인 도요타는 오너일가가 사업은 승계하지만 CEO는 오너와 전문경영인과 경쟁을 통해 선출된다. 그래서 창업 후 지난 80년간 11명의 CEO 중 오너 일가가 6명, 전문 경영인 출신이 5명이다. 오너일가도 도요타 입사 후 CEO자리에 오르기까지 평균 30년이 걸렸다. 혼다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는 그의 경영전략이 실패했을 때, 자신과 가족이 모두 경영에서 동반 퇴진했다. 그가 아직도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의 하나인 이유다. 창업자라도 경영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진해운 사태는 우리나라 ‘가족 기업 승계 문화’가 가진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가업 승계는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교육과 훈련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강소기업도 나올 수 있다. 최 전 한진해운 회장은 청문회에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경영진이 선진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기업승계 문화가 선진화돼야 할 때다.
정구열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본 칼럼은 2016년 10월 12일 경상일보 19면에 ‘[정구열칼럼]한진해운 사태가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