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태풍이라던 `차바`가 매우 빠른 속도로 한반도 남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바는 작지만 강했다. 경북 울산 지역에서는 71년 만에 폭우가 쏟아졌고, 강수량 300㎜가 넘는 지역이 나왔다. 짧은 시간에 강우가 쏟아지면서 배수량 한도를 초과했고, 태화강도 순식간에 범람했다. 대응이 어려웠다. 수많은 차가 물에 잠겼다. 특히 소상공인이 몰려 있는 태화시장과 우정시장은 심각한 피해를 봤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기상청은 50~250㎜의 큰비가 내린다고 경보했다. 그러나 범위가 너무 모호했다. 국민안전처는 물이 불어난 뒤에야 비로소 주의하라는 경고 문자를 보냈다.
도시 인프라 개선에는 엄청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급히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경고를 내리고 주의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조금만 더 일찍 조금 더 강력한 경고를 내려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마침 미국에서도 초강력 허리케인 `매슈`가 지나갔다. 매슈는 아이티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미국이 본 피해는 크지 않았다. 미국은 매슈가 다가올 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경고를 내보냈고,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 폭풍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This storm will kill you)”고 경고했고, 150만명 이상의 플로리다 주민들이 미리 대피했다.
미국에서 지내다보면 별로 대단하지 않은 재난에도 너무나 쉽게 휴교령이 내려지고 대피령이 발동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TV에서는 하루 종일 속보를 내보내며 재난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하지만 만일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어 결국은 큰 이익이 되곤 한다. 거짓말쟁이 양치기일 수 있지만 `선량한 양치기`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재난 관리의 악몽이었다. 허리케인과 만조가 겹치면서 뉴올리언스시의 제방이 붕괴됐고, 저소득층이 밀집한 로어나인스워드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경고도 늦었고, 대피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으며, 주민들은 방심했다.
이후 미국은 `포스트 카트리나 재난관리개혁법`을 제정, 재난이 오기 전에 연방정부가 미리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2012년 뉴저지 지역에 카트리나만큼 강력한 허리케인 `샌디`가 덮쳤을 때 미국의 대응은 달라졌다. 연방정부는 미리 피해 예상 지역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시켰고, 뉴욕과 뉴저지는 주 차원에서 강력한 경고와 함께 주민 대피, 재난 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난 관리를 매우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도 재난 관리에 더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위험한 금융상품을 팔 때 그 금융상품의 위험을 반드시 미리 고지해야 한다. 즉 위험 정보에 대한 강제 고지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불확실한 위험이지만 미리 경고를 하는 것이다. 재난 위험성 역시 불확실하지만 그 위험도는 금융상품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정부는 `거짓말쟁이 양치기`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더욱 적극 재난을 경고해야 한다. 태풍이 오기 며칠 전에 미리 강력히 경고하고, 침수 우려가 있는 저지대는 꼼꼼하게 대비해야 한다. 필요하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강제 대피도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도 이제는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기상청이나 국민안전처가 경보를 적극 하지 못하는 것은 오보가 됐을 때의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쓸모 있는 경보는 미리 이뤄진 경고며,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국민들은 이를 이해해야 한다.
정지범 울산과학기술원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learning@unist.ac.kr
<본 칼럼은 2016년 10월 17일 전자신문 26면에 ‘[기고]재난과 양치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