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가 사상 처음으로 글로벌시장에서 100억 달러이상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이제 종파간의 종교갈등을 넘어 정치적 긴장관계로 치닫고 있다.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성공적 핵협상으로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은 제재이전의 생산수준으로 복귀하기 위해 강경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석유산업 국유화 조치 이후, 감산 및 금수조치를 통해 두 차례나 세계 석유위기를 조장하면서 세계석유시장을 쥐락 펴락했던 OPEC이 40년이 지난 오늘날 심각한 대내외 문제에 봉착했다 하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느낌마저 든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선 가격 통제력을 상실한 데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80년대 들어 장기 기간계약 밖으로 잉여물량이 공급되면서 현물시장이 발달하게 됐고 현물시장에서 거래가격이 형성되기 시작하자 견고하던 ‘공식가격체제(Official Selling Price ,OSP)’가 무너지게 되었다. 또한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런던의 국제석유거래소(IPE)가 개설되면서 시장가격 발견기능이 한층 강화되기 시작된 점이다.
이제 산유국은 임의로 가격을 결정하던 가격결정자(price maker)에서 가격수용자(price taker)로 지위가 격하돼 가격 통제력을 상실한 데 있다. 지금도 중동 산유국의 판매가격은 아시아 고객에게는 Dubai와 Oman원유 평균가격에 연동돼 결정되며 유럽고객에게는 Brent가격에 연동해 미국 고객에게는 WTI가격에 연동돼 결정되고 있다.
둘째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세일 혁명을 과소평가한 점이다. 마치 눈에 보이는 빙산의 일각만 보고 판단하면서 물속의 엄청난 변화는 읽지 못한 결과다.
또 하나는 석유를 둘러싼 국제관계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화, 다기화(多岐化)된 점이다. 70,80년대만 해도 산유국과 소비국의 단순한 대립구도였다면 지금은 OPEC 회원국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나타나게 됐고 OPEC 외부환경은 더욱 거칠게 형성되고 있다. 즉 환경규제로 인한 천연가스 및 신.재생 에너지의 꾸준한 성장세 지속, 석유채굴기술의 지속적 발전과 셰일 석유의 등장, 전기차/자율 주행차 기술의 실용화와 수송용 석유소비 둔화 전망등 석유수급의 비우호적인 환경일색이다.
우호적인 환경이란 막대한 매장량과 저유가 지속에 따른 석유개발투자위축이 초래할 유가상승 가능성이 있으나 이것 또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논할 사항이어서 당장 해결책을 주지는 못한다.
OPEC은 석유시장을 주도할 것인가? 쇠퇴(衰退)의 길로 갈 것인가?
OPEC의 미래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은 테마지만 수급 통제력,가격 통제력, OPEC내부의 결속력, 비OPEC 산유국과의 공조 측면, 석유산업에 대한 인식문제등을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수급 통제력 측면에서 시간이 경과될수록 그 영향력은 감퇴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1차 에너지 구성(Mix)에서 석유 의존도(32.9%)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천연가스(24%)와 재생 에너지 비중(2.8%)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석유 부문에 있어서도 과거 90년대 2000년대 40~44%의 공급능력을 유지했으나 지금은 겨우 37%정도 공급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은 공급능력이 보통 1/3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공급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현재 석유시장에서 생산조절자(swing producer) 역할을 하는 나라는 사우디가 아니라 미국이란 점에서 행동반경이 극히 제한돼 있는 셈이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향후 30년간 석유수요 증가세 둔화를 점치고 있다.
둘째, 가격 통제력 측면에서 보면 가격통제력은 이미 상실했다고 봐야 하며 다만 가격수용자로서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석유시장에 유리한 사인을 보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설사 가격이 배럴당 50-60달러로 올라 간다 해도 기동성이 뛰어난 미국의 세일 석유(가스)의 즉각적인 증산을 가져와 가격은 곧 하방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OPEC내 결속력 측면에서 30, 40년전만해도 주로 목표 유가를 놓고 사우디를 중심으로한 온건파 산유국들과 이란, 리비아 ,알제리 등 급진파 산유국간의 대립은 있었으나 지금처럼 산유량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양상을 보인 경우는 드물었다. 개별 산유국은 자기가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는 좁아 보인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 양상은 증폭돼 가고, 리비아, 나이제리아 이라크도 자기들 몫을 고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합의할 때는 감산 또는 동결을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9월 하루 산유량이 3,360만배럴로 8월 보다 오히려 30만 배럴 증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OPEC은 이제까지 합의된 생산량을 지킨 적이 거의 없고 항상 초과 생산해 왔다.
넷째, 비OPEC국가와의 공조 측면에서는 세계최대 산유국인 러시아와 정책 공조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러시아도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감산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금년 사우디와 합의할 때도 현 산유량 동결수준의 공조이지 감산을 포함한 공조는 할 의사가 없었다. 특히, 유럽시장에서의 공급감소분을 동아시아에서 만회하려는 소위 ‘신동방 정책’을 이제 막 추진하는 입장에서 신시장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면서까지 감산에 응할 리는 만무하다.
다섯째, 석유산업에 대한 인식문제에 있어서 OPEC은 상당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과거 성공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에너지 산업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이 있는 세일 혁명을 간과했고 천연가스 수요증가세 및 LNG 벙커링이 개시될 경우의 역동적 천연가스시장의 출현 가능성도 도외시 한다. 이미 국제해사기구(IMO)는 2025년까지 LNG벙커링에 관한 협약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전기차/자율주행차/수소차등 기술혁신에 따른 근본적 수요변화에 대한 대비도 없어 보인다. 에너지 산업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일련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OPEC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당장 OPEC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시간이 경과할수록 OPEC은 영향력이 엷어지면서 석유시장을 통제하기보다는 시장순응적 스탠스를 유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수급측면에서도 공급능력은 약화되고 수요 또한 타에너지로부터 점차 잠식당할 것이다. 이미 상실한 석유시장 가격 통제력은 막강한 금융기관 참여자들에 의해 방향성이 결정되고 OPEC은 조수석의 관람자가 될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최대 호황기에도 OPEC은 능동적으로 시장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구경꾼으로서 이익만 향유했을 뿐이다. 이제는 OPEC회의조차도 석유시장 특정 참여자들의 시장 포지션 조성의 이용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OPEC회의 등 동향이 일시적으로, 단기적으로 유가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조용히 또 깊이, 도도히 흐르는 에너지산업 전반의 변화의 물결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 같다.
김관섭 UNIST 경영학부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6년 10월 21일 울산매일신문 23면에 ‘OPEC 시대는 종언(終焉)을 고(告)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