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최순실게이트로 온 세상이 난리다. 필자는 한달에 한번꼴로 글을 쓰는데, 공교롭게도 매번 ‘난리급’에 해당하는 키워드가 새롭게 등장한다. 때문에 별일 없었다면 집필계획에 따라 의중을 가지고 필자의 전문영역인 디자인과 미래 모빌리티에 관한 글을 연재처럼 실었을 터인데, 왜 이리도 매번 나라를 뒤덮는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옛말에 나라의 어려움을 ‘내우외환’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다. 홍수, 지진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특정인의 전횡과 국정농단, 여야정쟁, 끝 모르는 경제불황은 내우, 북핵,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삭막한 한일·한중관계, 불확실한 국제 경제지표들은 외환임에 틀림없다. 그 내우외환의 맥락은 고스란히 하위요소에 해당하는 우리일상이나 사회에 복제되어 있다.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화, 디자인의 영역도 다름 아니다.
우리가 대통령의 한 측근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측근이어서가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로서 대통령의 직무에 관여하였다는 것이다. 선거 등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거나 정당한 노력으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전문성을 획득한 전문가나 공직자가 아닌 일개 민간인의 신분으로 대통령을 통해, 최고전문가집단이 심사숙고해서 만들고 집행해도 모자랄 정책들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것에 있다.
즉 공적 권위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과 그 집단이 정책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 때문에 해당분야의 전문가들과 일선공직자들, 국민들이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중요키워드는 ‘전문성’이다. 비단 오늘의 청와대발 국정농단 사태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전문성’이나 ‘공적권위’를 인정하는 의사결정과 정책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쉽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우리가 과연 어떤 정책을 추진하거나 사업을 시행할 때 해당분야의 ‘진짜 전문가’를 찾았을까? 그저 인맥 중에 비슷한 전공자를 전문가로 데려와 앉혀놓은 각종 위원회, 심의 기구, 자문 기구는 과연 정당한 권위와 직능의 구성체인가를 생각해본다.
그 ‘가짜 전문성’의 본질은 결코 최순실게이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디자인전공 교수가 인간공학 전문가이거나, 인간공학전공 교수가 디자인 전문가일수 없지만,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라는 소속학부의 명칭 때문에 서로 엇갈린 ‘전문가’로 위원회나 심의기구 위원으로 ‘모셔짐’을 당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종종 있다. 민망할 따름이다. 또 어떤 분야의 실무자와 연구자의 전문성을 나눌 때에도, 어떤 기업에서 어떤 업무를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했는지, 어떤 학문 분야를 얼마나 깊이, 얼마 동안 파고들었는지 살피는 경우가 드물다. 업무영역과 상관없이 단순히 기업에서 근무하였다면 무조건 해당분야 실무전문가라 평가하는 경우도 많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오늘날, 심지어 십수년전 기업직무를 여전히 실무적 전문성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공적 권위를 부여받은 ‘가짜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 앞에서 얼마나 민망할 것이냐는 둘째 문제고, ‘가짜 전문가’에 의한 정책, 사업의 수립과 집행이 낳을 폐단이 가장 큰 문제다. 물론 소 뒷걸음에 쥐를 잡거나, 삼년 넘은 서당개가 읊는 풍월처럼 진행이 순조롭고 결과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있다. 하지만 ‘가짜 전문가’의 ‘농단’이나 ‘요행’에 우리의 기대를 거는 도박은 ‘최순실의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전문성에 바탕을 둔 정책과 사업의 수립, 집행이야말로 우리의 오늘 내일에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 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11월 16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시대유감과 전문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