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색의 항상성’에 대해 소개했다. 물리적인 색 정보는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 사람의 시각 시스템은 환경 변화를 상쇄시키는 능력이 있어 물체의 색들이 항상 동일한 색을 갖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아래 그림을 보면 두개의 회색 네모가 한쪽은 검정색 위에 다른 한쪽은 흰색 위에 올려져 있다. 이 두 회색은 분명히 같은 디지털 신호를 이용해 만들어진 색이지만 검정 바탕 위에 있는 회색이 흰색 바탕 위에 있는 색보다 더 밝아 보인다. 이는 ‘명도대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현상이다. 동일한 디지털 신호로 만든 진분홍색이 진한 빨강 배경과 회색 배경 위에 각각 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같은 자극으로 만들어진 색이지만 우리 눈에는 회색 바탕 위에 있는 색이 더 진한 분홍색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는 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경색만은 아니다. 화창한 날에는 나뭇잎, 길가에 심어진 꽃들, 모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 등 모든 물체들의 색이 흐린 날보다 밝고 선명하게 보인다. 이처럼 주변의 밝기에 따라서 색이 달라 보이는 것 외에도 조명색 즉 푸르스름한 조명인지 아니면 노르스름한 색의 조명인지에 따라 방에 있는 물건들의 색이 조금씩 달라 보이게 된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혼동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물체의 색이 항상 동일한 색인지, 아닌지 하고 말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주변 환경에 따라 색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엄청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색의 항상성이 완벽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색채 항상성이 완벽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이른 아침인지 밝은 대낮인지도 구분할 수 있고 조명이 노르스름한지 푸르스름한지도 구분할 수 있으면서도 물체들의 색이 ‘어느 정도’ 일정한 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곽영신 UNIST 교수·디자인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3월 25일 경상일보 18면에 ‘[곽영신의 색채이야기(5)]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보이는 색’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