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은 뜨거우나, 학구열은 싸늘한 우리 사회. 최근 10년간 PISA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 결과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읽기, 수학, 과학에서 OECD 국가 중 거의 매번 5위 안에 드는 학업능력을 갖고 있다.
2013년에는 수학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한국 학생들은 뛰어난 학업 능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같은 해에 ‘수학 학습 동기’와 ‘자아 신념’ 분야를 측정해보니 65개국 중 58위였다고 한다. 이 결과가 나온 후 많은 이들이 교육 당국이 학생들로 하여금 배움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지적을 했지만, 2017년이 된 지금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학업능력이 상위권이라는 점이 바로 ‘학구열’이라고 해석돼 한국의 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니 참으로 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육학 이론에 따르면, 학습 동기는 크게 재미, 필요, 보상으로 나눠진다. 한국의 교육은 ‘보상’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습 자체는 재미를 제공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재미를 제공한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 주는 재미를 위해 공부라는 고문을 참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고난을 참으면 쉬거나 놀 수 있다는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한다는 고전적인 조언이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대입을 준비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당당히 하는 우리 사회. 배움이란 무엇 보다도 ‘(좋은) 대학 입학’ 이라는 보상을 위한 것이고, 이는 대학 입학 후에도 계속된다. 입학 후에는 ‘장학금’이나 ‘스펙’이라는 보상을 위한 것이다. 최근 소위 ‘SKY’ 대학에 간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는 과목 관련 사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학생들이 똑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들의 배움은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내 삶과 연관되는 필요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학점이라는 보상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 졸업 후에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한 유니스트 졸업생이 저녁 7시 퇴근 후 ‘마케팅 조사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재미’와 ‘필요’에 의한 학구열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학습 동기가 보상에 치우쳐 있으면 배움의 목적은 지식의 나열과 암기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가령, 5살 아이가 자동차 이름을 술술 나열한다거나, 공룡 이름을 말한다거나 하면 어른들은 감탄을 한다. 그리고 ‘천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지?’라는 질문에 대답하거나, 그것과 또 다른 사물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면 매우 똘똘한 아이라고 간주된다. 물론 이러한 지식은 중요하다. A와 B가 구분되는 것을 안다는 것은 각각의 성질의 차이와 유사성을 아는 것이고 이는 지식 습득의 기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구분에 대한 배움이 다른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령, 티라노사우루스와 알로사우루스를 구분해낼 수 있다고 할 때, 이들이 어떻게 다른지, 무엇을 먹고 어떤 곳에 살았는지, 공룡은 왜 사라졌는지, 우리 인류는 그러면 언제 출현했는지도 알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이는 아마도 아이들이 학교나 집에서 이러한 질문을 유발하는 교육을 받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선행학습을 하면 뇌를 망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암기 교육을 받은 인재는 필요하지 않다고 한들, 사람들은 여전히 ‘하던 대로’ 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한다. 한국 사회의 고도성장 시기에 하루라도 빨리, 한명이라도 더 기술과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 나와서 산업 현장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장은 멈췄고, 산업은 변화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은 그 고도성장 시기에 자신들이 배웠던 방식대로 교육을 하려고 한다. 이제 고독한 암기 공부로는 넘치는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배울 수 없는데 말이다.
보상만이 아닌 재미와 필요에 의한 배움이 있어야 삶과 지식이 순환될 수 있을 것이다. 기왕에 다가오는 백세 시대, 그 기간 동안 평생 배워야 한다면 이러한 배움이 좋지 않겠는가.
최진숙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3월 29일 울산매일신문 22면에 ‘[사는이야기 칼럼] 우리 사회의 교육현장에서는삶·지식 순환교육이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