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행정부에서 지역공동체를 복원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마을기업 육성사업을 시작한지 5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전국에서 1000개가 넘는 마을기업이 지정되었고 울산에서도 25개의 마을기업이 운영 중이다(2013년 말 기준). 마을기업이란 지역사회의 문제를 비즈니스 방식을 활용하여 해결하는 기업형 사업체이다. 지역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공동체가 스스로 해결하면서 사회·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마을기업의 목적이다. 생각해보면 마을기업은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공통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해 온 소위 자조적 공동체들이 있다. 문제 해결은 창의적 활동이기 때문에 이들을 창의적 공동체(creative communities)라고도 부른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창의적 공동체 가운데 하나는 서울 마포에 있는 성미산마을 공동체이다. 성미산 공동체는 1994년 공동육아에 관심있는 맞벌이 가족 20가구가 힘을 모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유치원, 방과 후 학교도 운영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공동출자를 통해 대안학교도 만들었다. 또 아이들이 안전하고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유기농 농산물을 취급하는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 친환경 마을식당과 반찬가게도 열었다. 생협 옆에는 의류, 생활용품, 문구류 등 재사용하기 위해 만든 되살림가게를 열었고, ‘두루’라고 불리는 지역화폐를 사용하며 수익의 일부를 마을로 되돌렸다. 가게의 운영은 자원봉사자가 3시간씩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주거공간(co-housing)도 만들었다.
공동주택은 여러 가구가 한 건물에 같이 살면서 넓은 부엌이나 식당, 세탁장, 공방 같은 시설을 공유하는 주거형태이다. 입주자들이 건축가를 불러서 원하는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반응이 좋아서 벌써 공동주택 3호가 올라가고 있다.
이렇게 협력해서 일을 같이 하다보니 자신감도 늘고, 커뮤니티도 커지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마을에 있는 카페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을 형편이 되자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이 공동출자를 해서 카페를 인수했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 된 이곳은 방과 후 아이들도 들르고 마을에 견학 온 사람들이 마을 소개를 듣기 위해 머물기도 한다. 일년에 한 번씩 마을축제도 여는데 축제를 기획하는 것도 마을 사람들의 몫이다. 마을극장도 만들었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카셰어링이라는 새로운 시도도 해봤다. 자동차를 줄이고 탄소배출을 절감하기 위해 이웃 몇 가구가 자동차를 공유하는 아이디어였는데 적은 인원이 모여 하다보니 불편함을 감수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성미산 주변에 살면서 다양한 협동적 서비스를 운영하거나 참여하는 사람들이 1000명 가까이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이들을 일컬어 성미산 공동체라고 부른다다. 성미산마을의 다양한 협동적 서비스들이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을 벌릴 수 있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숙한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성미산마을의 성공사례를 보고 주변에서 따라하기도 하지만 단시간에 쉽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미산 공동체의 밑거름이 된 초기 공동체의 헌신적인 노력과 공동체가 성장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미산 공동체와 같은 사례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능하다. 성미산 공동체를 복제할 수는 없지만 이런 창의적 공동체가 보다 쉽게 형성되고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지원할 수 있다. 마을기업 사업도 이러한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을 보면 많은 마을기업들이 기대했던 만큼 사회·경제적 가치를 내지 못한다.
필자는 작년에 울산 어느 구의 마을기업 사회적 가치 창출 현황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조사 대상인 마을기업 7곳 가운데 제대로 활동하는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될성부른 마을기업 후보를 찾는데 애를 먹는다고 하소연한다. 마을기업 운영에 관심있는 사람은 많지만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개별 마을기업이나 지역에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 건강한 사회적경제의 기반이 없는 가운데 단기간에 사업 성과를 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은 4년 연속 우수마을기업을 배출하는 놀라운 실적을 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마을기업 육성 담당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백준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4월 1일 경상일보 18면에 ‘창의적 공동체의 사회·경제적 가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