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알려주는 사람을 우리는 점쟁이라 부른다. 또 미래를 잘 맞추는 점쟁이를 ‘용한 점쟁이’라 부른다. 그럼 ‘용한’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래를 잘 알아맞힌다는 의뢰인 의견데이터의 축적이 만들어낸 ‘권위’다. 미래를 알아맞히는 비법은 역술이나 접신 등 점쟁이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용한’이라는 권위를 얻는 시스템은 사뭇 합리적이다. 그런 용한 점쟁이를 찾아 삼천리를 오가고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의뢰인이 알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닥칠 ‘미래’라는 시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들여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미래가 궁금할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앞날의 상황을 미리 파악해 대응할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부품제조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몇 년 후의 업황을 미리 파악, 사업이 잘될 방안을 찾아 대비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대비’라는 각자 몫의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사실 점쟁이를 찾아 점괘를 볼 필요도 없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점쟁이라도 찾으면서 미래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설계하는 능동형 인간인 셈이다.
그토록 알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스스로 한번 찾아볼 수는 없을까? 필자가 점쟁이는 아니지만 이 지면을 통해 몇 가지 모습을 점쳐줄 수 있을 것 같다. 용한 점쟁이는 아니니 믿거나 말거나다. 그래도 필자는 항상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대상을 설계하는 디자인 연구자니까 아주 엉뚱하지는 않을 것이니 속는 셈치고 믿어보시라.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27년이다. 1.완전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탑승자가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다.
2.내연기관은 승용차에 쓰이지 않게 됨으로써 주유소는 없어진다. 절대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소로 바뀔 수 없다. 주유기당 3분에 10만원 매출을 발생시키는 주유소가 충전기당 3시간에 8000원 매출을 만드는 전기충전소로 바뀔 리 없는 까닭이다.
3.자동차 정비소와 보험도 그 형태가 바뀐다. 완전 자율주행기반의 미래차들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크고 작은 접촉사고, 충돌사고로 인한 차량수리나 보험문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4.지금처럼 앞쪽을 향해 배치된 자동차 내부도 라운지처럼 마주보고 앉는 레이아웃으로 바뀐다. 운전도 필요없고 충돌 사고도 없는데, 굳이 앞을 보고 앉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엔진과 범퍼와 안전벨트, 에어백도 사라지는 미래차의 모습은 현재와 사뭇 다른 형태와 구조를 갖출 것이다.
5.모든 자동차의 운행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컨트롤되는 교통 시스템은 점차 행정기관의 체계와 관련 조직을 바꾼다. 신호위반딱지를 떼는 교통경찰은 만날 일이 없다.
6.기사가 운행하는 택시도 사라진다. 자율주행 기반의 무인택시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제도가 바뀌면서 시민 각자의 자가용이 유휴시간을 활용해 택시 아르바이트를 함으로써 자율주행 전기차를 소유한 시민들은 쏠쏠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다.
7.자율주행 전기차가 비쌀 것이라고? 우리는 렌터카나 통신사, 네이버, 다음카카카오와 연계된 패키지로 소액 월부금을 내며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 몇 시간을 통신사가 운영하는 택시로 운행시키는 약정 조건을 달면 현재의 휴대폰처럼 차량 구입 장벽이 낮아진다.
8.제조사의 차량 판매는 더 늘어난다. 일일 운행거리가 늘어나 차량 교체 주기가 대폭 짧아지는 까닭이다.
9.대중교통망도 바뀐다. 일일이 시간을 기다려 탑승하고 운행노선에 나의 경로를 끼워 맞춰 내려야 하는 버스보다는 원할 때 즉시 불러 타는 택시 이용이 늘어날 것이다. 택시 이용료는 더 낮아질 수도 있다. 목적지로 이동하는 차내에서 광고사의 동영상시청이나 설문에 응하는 것으로 택시비를 할인 받거나 면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주차장은 각각의 충전기를 갖춘 주차면으로 바뀌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복합사업장으로 바뀐다. 지면이 짧아 여기서 끊는다. 자신이 능동형인간이라면 5월23일까지 각자 몫의 일을 생각해보시라. 2027년 점괘가 이럴진 데 자신의 기회요소는 무엇이며 어떤 대비를 할 것인가?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4월 21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2027년 점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