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미디어를 보면 최근 경북에 이어 부산, 경기까지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원이 한창이다. 울산도 준비에 한창이고 어떤 것을 담을 지에 대한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지만, 그저 한참 흥행중인 3D프린터와 기계부품 부스, 울산 연고 대기업 홍보관이 전부가 되지 않을까 사실 걱정이다. 그런 콘텐츠가 창조경제나 혁신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혁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는 창조와 경제, 혁신을 붙여놓은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새 아이디어로 신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를 활성화 시켜보자는 것이 센터의 목표일 터인데, 그냥 대기업 홍보관과 일반인에게는 낯선 전문적인 기계 설비를 전시하는 것이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장소의 프레임에 맞는 것일까?
물론 대기업이 개발하는 신기술은 규모의 정도에 따라 파급효과가 큰 가치 있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대기업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기업활동일 뿐이다. 다시말해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존재나 지원 여부와 상관없이 대기업이 망하지 않기 위해 해야만 하는 활동이라는 뜻이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나, 군소기업의 에너지가 뭉쳐진 아이템이 신사업으로 키워질 수 있는 간절한 기회를 마련해주는 장소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되어야 한다. 아이디어나 사업화가 필요하지만, 기회가 없어 애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요즘 유행인 TV속 사업 인큐베이팅 관련 프로그램 몇 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도 있고, 이 글을 쓰는 본인에게도, 동료 교수 중에도, 그 밖의 지인 중에도 있다.
첨단기술 개발에서 규모의 것은 대기업의 역할이며, 개인이나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도 없는 영역이다. 막 싹을 틔울 것 같은 창조,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유연성과 다양성으로 맡을 수 있는 주체는 열정적 사업가와 연구자, 일선 대학교와 연구소, 디자인 역량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를 서포트하는 주체가 바로 행정기관과 기관의 센터 그리고 대기업이다.
최근 판교에 개원한 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좋은 사례다. 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 KT가 주축이지만 미디어에 등장하고 대통령이 관심을 보인 아이템들은 KT의 신기술이나 제품이 아니라 경기도의 벤처, 신생기업의 아이디어 제품이나 거미로봇 같은 연구시제품이었다. 경기도와 KT는 그들을 인큐베이팅하는 훌륭한 서포터였다.
다시 울산을 보자. 앞서 이야기한 프레임으로 본다면 울산광역시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심기에 너무 좋은, 비옥한 밭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나 S-OIL 같은 거대기업이 서포터가 되어줄 수 있고, 1차, 2차, 3차밴드 기업들과 수천개 중소기업들이 활동하는 주무대인데다가 대폭적으로 신규사업을 확장하며 신규사업을 줄이는 다른 지자체와 반대로 한참 도전적인 시·군의 행정기관까지 모두 긍정의 3박자가 아닐 수 없다.
단 하나 경계할 것은, 앞서 우려한 것, 겉치레에 찌든 관성이라는 습관이다. 이제 갓 해외에서, 서울에서 유니스트의 교수로 온 필자에게 비친 울산은 변화와 혁신을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다가 그냥 하던 대로, 습관대로 하려는 관성에 찌들어 있다. 지금 세계 트렌드가 뭔지, 울산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시가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좋겠다. 씨를 만드는 사람이 사업가라면 뿌리는 사람은 행정기관과 대기업이다. 울산이라는 밭에 무슨 씨를 뿌려야 할지, 그냥 습관대로 뿌릴지 선택은 시가 하겠지만, 대박을 칠 종자가 무엇인지는 좀 다녀본 전문가가 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흔한 대기업 홍보관도 아니고, 울산시 홍보관도, 외국산 3D프린터업체 기술시연장도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울 그런 아이템들이 있고, 혁신적 연구자와 중소기업이 빛을 받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청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라니, 더더욱 말이다.
정연우 유니스트 교수·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4월 16일 경상일보 18면에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습관적 관성’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