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던 가습기 살균제 파동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살충제 계란과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생활 속에서의 유해 화학물질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화학물질 공포증, 즉 케모포비아가 소비자들 사이에 더욱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정부가 보여준 부실 및 늑장 대응은 정부의 발표내용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화학물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가중시켰다.
현재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피해자 산정 기준, 살충제 계란의 유해성 검증 과정, 생리대 발암물질의 경우 극미량에 대한 유해성 유무 및 역학조사 필요성 등과 관련해 여전히 논란거리가 남아 있어서 어느 사건 하나도 쉽사리 마무리 되지 않을 듯하다.
화학물질의 사용은 기본적으로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식료품 및 생활용품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제품들에는 다양한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 화학물질들은 제품에 필수 혹은 부가적인 기능들을 부여하거나 제품의 변질을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런 화학물질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인체에 직간접적인 유해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무해하다고 알려진 화학물질들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출에 대해 완벽하게 안전성을 보장할 수는 없으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독성 기작이 발견될 여지도 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만을 생각하면 최대한 이들의 사용을 막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지만, 이 경우 제품의 제 기능을 구현하기 어려워지거나 자칫 제품의 변질 등으로 오히려 위해성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특히 이런 딜레마는 살생물제들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살충제나 살초제, 항생제, 소독제 등은 병원성 세균을 포함한 유해한 생물들의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이다. 그러나 사실 인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세균 혹은 해충들에게만 선택적으로 강한 독성을 나타내는 화학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살생물제들의 경우 급성적인 인체 독성을 유발하지 않을 뿐이다. 살생물제들의 만성적인 독성에 관해서는 아직까지 정보들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살생물제들은 자체로서의 직접적인 독성뿐만 아니라 유해성을 가지는 부산물을 생성함으로써 간접적인 독성을 유발하기도 한다. 소독제 사용에 의한 유해 소독부산물의 생성은 수처리 분야의 오랜 딜레마이다. 정수처리공정에서 염소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소독제로서 병원성 세균을 불활성화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염소는 수중의 유기물과 반응해 트리할로메탄과 같은 발암성 부산물들을 생성한다. 이런 부산물들은 당장 인체에 가시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만성적인 위해를 가할 수 있다. 많은 정수처리장들이 염소의 과다한 사용을 줄이기 위해 오존을 대체 소독제로 사용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오존도 다수의 발암성 소독부산물들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학물질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 기능은 유지하면서 인체에 완전히 무해한 화학물질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해 화학물질들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산 공정 및 제품의 설계, 유해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친환경 화학물질들의 개발, 그리고 보다 신뢰할 수 있는 화학물질들의 유해성 평가방법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이 기술적인 대응방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정책적 측면에서는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강화된 관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들에게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교육 및 홍보 프로그램의 마련도 필요하다.
이창하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9월 25일 울산매일신문 22면에 ‘[현장소리 칼럼] 화학물질 딜레마’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