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는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해결방안에 대한 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를 거론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글부터 국가권력에 대한 신뢰도 제고와 법치질서 확립을 통해 사회적 비용의 개선을 촉구하는 대중적인 글들이 많다. 사회적 신뢰는 어떻게 비용과 연결되는 것일까? 공권력에 대한 신뢰도 제고와 법질서 확립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은 과연 낮아질까?
최근에 있었던 무상급식이나 노령연금과 관련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의를 생각해보자. 사실 복지혜택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는 매우 효율적이다.(물론 효율성 이외에도 인권 등 다양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관련돼 있지만 효율성만을 고려해 보았을 때 그러하다는 말이다.) 만일 정말 필요한 사람만이 복지혜택을 받는다면 최소한 효율성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불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부정수급과 복지의존의 사례들을 접하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한 사람만이 복지의 수혜자가 된다고 믿지 않는다. 따라서 부정수급의 염려가 없는 보편적 복지를 요구하거나, 복지의존을 해결할 수 있는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
여기서 비용문제가 발생한다. 보편적 복지를 선택할 경우에는 복지에 의존해 일거리를 찾지 않는 사람을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고, 선별적 복지를 실행할 경우에는 부정수급을 차단하기 위해 많은 행정력을 투입, 수혜자를 선별해야 한다.
좀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비도덕적인 위법자로 인한 비용을 모두가 함께 지불하는 접근법과 이를 예방하기 위해 두터운 관리조직을 운영하는 접근법이 있다고 하겠다. 사회적 신뢰가 낮으면 위법자가 많거나 이를 감시하기 위해 비대한 관리조직을 운영해야 하므로 사회전체의 활력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비효율성을 찾아볼 수 있다. 출장기록을 부풀려 추가 근무 수당을 수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과도한 공문 처리로 인한 행정력 낭비를 지적했더니 반대로 몇 건의 공문을 발급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별도로 공문을 작성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결코 낯설지 않다.
두가지 비용이 동시에 발생하기도 한다. 리서치 커뮤니티에서는 한편으로는 일부 대학교수들의 연구비 남용 문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나치게 경직된 예산 활용 규칙과 이로 인한 서류작성업무 처리를 위한 시간적 물질적 비용의 문제가 있다.
저신뢰와 규제는 종종 서로 영향을 끼친다. 신뢰하지 못하므로 추가 규제를 만들며, 앞뒤가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로 인해 신뢰가 더욱 낮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신뢰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넓은 권한의 부여와 그에 걸맞는 책임지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업무를 처리할 때 담당자에게 취지와 의미를 명확히 설명하고 권한의 범위를 넓게 정해주어서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는 담당자가 자율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혹 잘못된 부분에 있어서는 절차적 결함과 담당자의 판단 오류를 구분해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담당자의 고의적인 위법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권한과 책임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동일한 위법에 대해서 높은 위치의 사람들이 낮은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재벌에 대한 관대한 처우와 전관예우현상은 이러한 인식이 현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사회적 신뢰 구축을 통한 효율성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넓은 권한 부여를 통한 신뢰 쌓기, 담당자의 자율적인 결정이 가능한 절차적 과정의 지원, 그리고 위법한 행동은 본인에게 손해로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이러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질 때 비로서 견고한 사회적 신뢰가 완성될 것이다.
주창희 UNIST 전기전자컴퓨터학부 교수 학술정보처장
<본 칼럼은 2017년 11월 9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효율성과 사회적 신뢰’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