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쓰이는 단어 ‘국뽕’이 있다. 느닷없는 ‘애국’프레임에 잡혀 마약중독자처럼 자의식 없이 동조의사를 위탁하는 행위로 나라의 ‘국’ 히로뽕의 ‘뽕’을 합성한 단어란다. 애국이라는 만병통치약수준의 악효 때문에 과거에는 정권의 생명연장 도구로 애용되었고, 요즘은 사회이슈나 문화 마케팅에도 쓰이고 있다.
국뽕의 작동원리는 보통 2단계로 나누어진다. 1단계는 국가적 자긍심을 만드는 사전작업인데, 우리역사·민족이 특별하다는 세뇌다. 국난극복의 영웅과 사회문화경제 위인들이 동원된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너무 특별해서, 영웅과 위인을 본받아 애국해야 한다는 의식을 만든다. 여기까지가 국뽕 1단계다. 사실 1단계는 정도에 따라 보통국가의 국민 의무교육 수준이 될 수도 있고, 독재국가의 사상교육이 될 수도 있다. 후자가 국뽕 1단계라 하겠다. 국뽕 2단계는 기획의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띄는데, 흔한 정치분야를 제외하고, 문화분야에서 영화가 대표적이다. 국가대표를 다루는 스포츠영화, 전쟁영화 등에 ‘애국심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체주의적 플롯을 넣어 흥행몰이를 유도한다.
필자의 전공인 디자인에도 국뽕이 많다. 우리건축, 가구, 제품이나 의상이 무조건 아름답고 우수하다는 주장이나 해석이 많은데 그게 다 국뽕디자인이다. 우리 고궁은 자연을 곁에 두는 지혜를 써서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수백배 큰 중국 자금성은 그저 허영의 상징이란다. 유럽의 화려한 궁전과 성, 교회 건축은 무자비한 비인간적권력의 유물이자 돌무덤같다는 평가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고 읽어보았을 것이다.
과연 사실인가? 역사적으로 건축물의 규모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경복궁이 자금성보다, 베르사유궁전보다 작은 이유는 조선왕의 힘이 약했을 뿐 우리왕이 특별히 겸손해서 궁궐을 아담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아마 조선 왕조가 경복궁을 자금성만큼 크게 지으려 했다면 백성의 원성과 민란에 직면해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 전통건축과 가구가 비대칭형상의 구불구불한 창호문과 다리, 장식을 가진 것은 우리조상이 특별히 자연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재료와 기후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의 자로 잰 듯 반듯한 목조건축과 가구는 정밀가공이 용이한 나무가 재료였기때문이지 집착병집단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특별히 정신문화를 숭상해서 기술개발과 상업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근대유럽만큼 활발한 경제활동이나 기술경쟁이 없었던 탓에 활성화 촉매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이, 중국사람이 후진적이고 무례하다는 인식은 국뽕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상해나 북경을 가보면 우리보다 훨씬 앞선 디자인과 시스템을 갖춘 공용자전거, 전기차, 전기 오토바이, 도로와 도시 인프라,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중국 상류층의 문화적 취향과 수준은 우리를 능가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국뽕은 일부 지역의 헐벗은 풍광과 무질서를 서울과 비교하며 폄하한다. 우리는 일본조차 수년전부터 비교열위에 넣지 않았던가. 자동차는 디자인과 성능에서 일본을 이미 추월한 분위기였다. 오늘의 현실은 도요타가 다시 세계 1위를 넘보고, 한국기업은 하락중이며, 전기차, 친환경차, 자율주행분야에서 일본은 이미 수위에 올라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얼마전까지도 한국기업들은 유럽을 모방하는 디자인수준으로, 고유 정체성을 확립중인 일본 디자인을 감히 넘어섰다 자평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일본 디자인에 손을 들어주고 있고, 우리는 오히려 중국에 추월당할 신세가 되었다. 이게 다 국뽕의 위력이다.
결국 국뽕이라는 비뚤어진 허구적 자만심은 구성원, 해당분야, 사회와 국가를 쇠락케 한다. 국뽕을 거부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스스로의 의지로 사안을 냉철히 들여다 보면 된다. 카더라 루머, 편견, 습관을 벗어나시라. 혁신을 외치는 행사치고 진부한 플랜카드 안붙은 적이 없고 지루한 연설 릴레이, 뻔한 사진찍기 안한 적이 없다. 웃픈(우습고 슬픈) 현실이 아닌가? 끝으로 우리만 특별히 잘났다는 국뽕 따위는 없다. 신은 만인에게 평등할진대 우리민족 우리나라에게만 특별사랑을 줄 그 어떤 이유도 없지 않은가? 이제는 마약을 끊을 때가 되었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11월 27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국뽕이라는 마약’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