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적 열등감과 우월감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계단은 작두다.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과 누군가 아래 있다는 안도감 없이는 아픔을 견디기가 녹록치 않다. 상승의 한계를 느낄 때쯤이면 희망은 불인정으로 변하고 안도감은 혐오로 대체된다. 상향적 불인정은 그리 잔혹하지 않다. 여전히 원하던 그 곳이니까. 하향적 혐오는 깊다. 어찌 그들이 나와 대등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은혜를 베풀 대상이란 말이다.
아래 계단에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우월감은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로 전개된다. 측은지심과 자기만족의 그 어디쯤에서 비롯된 자선과 기부, 그리고 다른 한편에 서 있는 열등함과 다름에 대한 혐오와 제압.
북미 대륙의 주인이었던 미국 원주민들은 완벽히 거세되고도 한참 후인 1924년에서야 미합중국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투표권은 그 20년 후부터 인정했다. 유럽계 백인들은 아리조나 장대한 계곡 지역 여기저기 산재돼 있는 인디언 부족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카지노 운영권을 줬다. 완전한 멸종을 앞 둔 원주민에게 베푼 백인들의 시혜였다. 그랜드캐년이었던가에서 만난 원주민계 미국인은 자기네들은 도박과 술 때문에 망한다며 자조했다.
미얀마의 로힝야족이나 중동의 쿠르드족은 혐오와 제압의 대상이 될 모든 조건을 갖췄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정부를 가지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열등하며, 민족의 뿌리가 다르고, 다수파와 다른 종교를 가졌다. 히틀러에게 내부 결속을 위한 혐오와 제압의 대상은 유대인과 집시였다. 흰 옷의 단일 민족의 정체성의 다른 얼굴은 타 민족과 인종에 대한 배타성이다.
네 살 아이의 엄마, 페미니스트 교사,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플러스사이즈 모델. 이 여섯 사람이 한 신문사에 모였다. 혐오를 넘어 라는 기획 특집이었다. 나는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해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사회의 주류인가 보다.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그 엄마를 탓하는 남성으로, 배우자가 이성이며, 한국인 부모로부터 서울에서 태어났다. 건망증이 심하다는 정도가 큰 장애이고, 미국까지 가서 오버사이즈 옷을 쇼핑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주류로서의 안도감은 딱 모래성만큼 단단하다. 그들이 나의 배우자, 아이 그리고 내 아이의 배우자가 되는 순간 나는 투쟁해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힘 있는 소설이었다. 평범한 여성이 ‘평범한’ 성차별을 받아가며 사는 이야기가 학회 차 프라비던스에서 머물던 일주일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미지는 전신을 모두 드러낸 형태가 아니었다. 네모난 카메라 앵글의 오른쪽 면에서 얼굴의 왼쪽 반틈을, 혹은 왼쪽 위 귀퉁이에서 눈과 코만을 드러내는 식이었다. 어느 장면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또렷하고, 슬픔도 기쁨도 없는 무표정한 표정이다. 내가 아는 그 누구도 아니었고, 그 누구이기도 했다.
나의 행복은 이웃의 행복에 의해 한정된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제압이 나를 주류로 편입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주류와 다수의 횡포를 견제할 일이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인권탄압 문제를 보면서 (영국 제국주의가 유발한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적 사회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왜 나는 한국에서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혹은 장애인으로서 살기가 떠오르는가. 그리고, 본 고를 쓰고 있는 지금(11월 27일) 미얀마를 방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힝야족의 눈물을 씻어줄 수 있을까.
송현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12월 6일 울산매일신문 16면에 ‘[시론 칼럼] 혐오를 넘어 혐오 너머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