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가「타이거 마더」(2011)라는 책을 쓴 후로 미국에서는 한동안 ‘타이거맘(Tiger mom)’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소위 ‘타이거맘’을 자칭한 에이미 추아는 두 딸에게 ‘2등은 꼴찌나 다름없다. 1등을 해라’라며 피아노 연습, 수학 반복 예습과 복습을 시키고,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을 금지하는 등 자녀의 역량 강화에 열정을 쏟은 결과, 두 딸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낸 아시아계 부모로 유명하다. 그 책이 나온 후 대중과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쏟아졌다. 과연 두 딸은 학대를 당한 것인가, 아니면 엄마의 교육열 덕택에 아이비리그 대학에 갔으니 결론적으로는 좋은 훈육이었을까.
이 논란 이후 미국에서는 데이트라인이라는 TV 뉴스 프로그램에서 각종 엄마 유형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특히 동물 이름을 따서 흥미로왔다. 타이거맘은 위의 에이미 추처럼 채찍질로 훈육하는 엄한 엄마이고, 돌고래맘은 애들과 같이 놀아주면서 교육시키는 엄마, 그리고 라이언(lion)맘은 바쁜 워킹맘으로서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엄마다. 거기다가 ‘헬리콥터맘’도 있다. 자녀 앞에 장애물이 놓여있다면, 헬리콥터처럼 날아와서 대신 처리해주고, 일정도 관리해주고, 심지어 커리어까지 정해주는 엄마다. 이와 같이 ‘~맘’ 용어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엄마가 자녀 훈육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유형화가 씁쓸하다. 마치 수행해야 하는 임무와 역할에 따라서 엄마들을 분류해 놓은 듯 하기 때문이다.
영화 ‘A.I.(인공지능)’에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에게 사람 아이의 형상을 한 A.I. 아이를 빌려주는 서비스가 등장한다. 극 중에서 한 A.I. 아이를 빌린 엄마는 점차 엄마의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아니라 너의 임무를 사랑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엄마에게 그대로 대입하면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보그맘’처럼 모성애가 입력된 사이보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보그맘은 엄마의 ‘임무’를 함으로써 자녀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다.
필자에게 엄마란 갑자기 비오는 날 우산이 없을 때 우산을 가져오셨고, 깜박한 도시락을 헐레벌떡 교실에 직접 배달해주셨으며. 추운날엔 따뜻한 국물 냄새가 퍼져 나오는 부엌에서 파를 썰고 있었던 분이다. 결혼 후엔 친정에 갈 때 마다 김치는 물론 마른 반찬, 약식을 한가득 싸주시는 분이었다. 예전에 아침 일찍 일어나 네 명의 자식들을 위해 도시락 여섯 개를 싸던 시절이 좋았다고 회상하시던 분이었다.
이와 같이 엄마는 항상 무엇인가를 해주시는 분이었고, 그게 당연했다. 그 외에는 엄마에 대해서 잘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맘’이라고 유형화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엄마란 인간이기 이전에 그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고방식이 깊이 스며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독자들의 어머니는 과연 어떤 분인가? 더 늦어지기 전에 그것을 한번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엄마라는 인간이 아니라 엄마의 임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기능과 역할로서의 엄마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바라 본 적 있는지 되새겨 보길 바란다.
최진숙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12월 11일 울산매일신문 17면에 ‘[사는 이야기 칼럼] 타이거맘과 보그맘, 그리고 엄마’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