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주지하다시피 초강대국이다. 지난 19-20세기는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시기이며, 후일 역사책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내세운 소위 ‘미국 문명’이 번창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필자가 미국 유학 중일 때 60대 중반의 스탠포드 대학 정치학자에게서 짧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의 성공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지.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크게 말은 안하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는가?” 한 나라 혹은 문명의 번성에는 여러 가지 성공요인이 있을 터인데, 도대체 꼭 집어낼 수 있는 한 가지 비밀이 무엇인지 좀 궁금했다.
그 분의 말인 즉, 미국 성공은 외부로부터 유능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받아들인데 있다고 했다. 아주 오래전에 정착한 아메리칸 인디언을 제외한다면, 미국은 지난 400여년 간 외부로부터 유입된 사람들이 건국하고 발전시켰다. 초기 영국계 정착민이후 다양한 지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노예로 착출되어 미국에 정착한 아프리카계 자손들, 현재 위스콘신, 미네소타 등의 미국 북부 주에 다수 거주하는 19세기 북부유럽계 자손들, 영화 ‘대부’에 나오는 19세기말부터 미국으로 대거 유입된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계 자손들, 20세기를 걸쳐 중국, 인도, 일본,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 각 지역에서 온 아시아계 자손들까지.
요즈음 미국 정치의 커다란 이슈는 이민법 개정, 즉 합법적 비자 없이 체류하고 있는 소위 ‘언다큐멘티드’ 거주자들에 대한 문제이다. 최근 발동된 오바마 행정부의 행정명령은 중남미계 히스패닉을 위시한 언다큐멘티드 거주자 500만명에 대해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궁극적으로 미국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취득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역사를 볼 때 미국은 결국 이민자의 나라이며, 그것도 다양한 지역의 이민자들이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입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와 연관되는 또 한가지 이야기를 미국의 한 과학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한 일본계 미국인 물리학자가 조금 논쟁적인 어조로 현재 미국의 발전은 ‘H1 비자’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H1 비자는 미국의 직장에서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는 이들을 채용할 때 발행해주는 일자리 비자이다. 실제로 지난 20년 넘게 미국의 기술혁신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 밸리 기업들이 채용하는 다수의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중국, 인도, 러시아,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다.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이공계 대학원생의 다수는 아시아, 유럽에서 F1 비자를 받고 입학한 학생들이며, 이들이 졸업한 후 H1 비자를 받고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잡는다. 페이스 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 등의 실리콘 밸리 기업가들이 개방적인 이민 및 비자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기업협회와 이익단체를 동원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1 비자의 경우도 미국이 외부 개방을 통해서 기술혁신에 필요한 인재들을 활용하는 단적인 예이다.
요즘 기술혁신의 화두 중의 하나가 열린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지향하는 지점은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수행하던 전통적인 R&D 모델로부터 벗어서 기업의 경계를 오픈하고 외부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신제품 개발에 사용자들의 요구와 사용자 경험을 끌어들이는 것, 모바일 생태계를 혁신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외부의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것 등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하는 사례들이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서는 미국 회사 P&G가 ‘연결과 개발’ (Connect & Develop)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학, 연구소 등을 통해서 다양한 제품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한 사례, IBM이 기존의 특허를 라이센스를 개방하고 오픈소트 공동체와 협력하는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요즈음 국내의 기업들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개념을 활용하여 외부의 개발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오픈 이노베이션의 논리는 국가 경영의 인력관리 측면에도 거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수세기를 걸쳐 다양한 외부 인재를 영입해서 이룩한 미국문명, 세계 각지의 유능한 기술인재, 엔지니어를 모아서 이룩한 실리콘 밸리, 모두 오픈 이노베이션의 논리가 거시적으로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영춘 UNIST 교수·경영학부
<본 칼럼은 2015년 2월 9일 울산매일신문 18면에 ‘미국, 실리콘 밸리, 그리고 열린 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