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EBS 다큐멘터리와 시사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얼마 전 EBS 시사강의 중 중국철학 노자/장자 편을 볼 기회가 있었다. 그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 편 나왔는데, 장자의 윤공편에 나오는 수레바퀴 만드는 노인과 윤공의 대화이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윤공이 어느 날 경서를 읽고 있었는데 옆에서 수레바퀴 만들던 노인이 말을 건넨다. “공이 보시는 책을 쓴 사람은 지금 살아있습니까, 아니면 죽었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윤공이 예전에 살았던 성현들의 귀중한 말씀이라고 대답하자, 노인이 좀 엉뚱한 말을 한다. 그 책에 나온 내용은 술독에 남은 찌꺼기와 같이 전혀 쓸모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윤공이 그 주제 넘은 노인의 말에 화를 내며, 합당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목숨을 내놓을 지라고 호통 친다.
제대로 글도 읽지 못하는 노인은 자신이 평생 하던 일인 수레바퀴 만드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수레바퀴의 축을 만들어 끼우는데, 그 축의 구멍이 조금이라도 넓을 치면, 처음에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퀴가 곧 축에서 빠지게 되고, 반대로 구멍이 조금이라고 비좁으면, 결국에는 바퀴가 계속 돌다가 파열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레 만드는 기술은 오직 자신의 손가락이 느끼는 감각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아무리 자식에게 설명하려해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곧 자식이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은 성현은 말씀은 그 성현이 살아있을 때 체험했던 그 만의 감각와 직관 속에서 나올진대, 그것을 후대에 읽어봤자, 그 살아있는 느낌을 깨우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마도 윤공은 그 노인의 말에 설득된 듯하고, 노인은 죽음을 면한 듯하다.
수레바퀴 노인의 이야기는 ‘묵은지’ (tacit knowledge), 즉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고 감각과 직관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하다. 예컨대, 자전거를 타는 일도 말과 글로 표현해서는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지만, 본인이 직접 자전거를 타면서 배운다면 그 균형을 잡는 느낌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고작 수레바퀴라고 하지만, 기원전 200 년 전 수레바퀴를 만드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아마도 차세대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첨단기술에 비유할 수 있겠다. 아무리 자동화된 조립방식을 이용한다해도 전기자동차를 만드는 지식 중에는 기업의 매뉴얼에 기록될 수 없는, 기업 만이 가진 ‘묵은지’가 그 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물론 수레바퀴 노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말과 글로 된 과거의 지식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배우는 대부분의 것은 말과 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다양한 책읽기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넓히고, 수업, 강의를 통한 효과적인 학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수레바퀴 노인의 뜻 속에는 통찰이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을 때, 그 책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혹은 글자 그대로 암기하는 것은 그리 교육적으로 의미있을 것 같지 않다.
설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텍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은 필요할지 모르나, 제대로 된 교육은 그 받아들인 내용과 현재의 나 혹은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연관시키느냐, 그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 책 내용 자체에서 멈춘다면 큰 의미가 있을까? 그 책의 내용이 나의 삶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간단한 그림책이더라도 이를 통해서 나의 삶과 연관시킬수 있다면, 그 책은 교육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학의 교육에서도 이 점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BS에서 특집으로 방송된 ‘대학교육과 창의성’이라는 보도를 보니, 학점을 잘 받는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수업 강의의 내용을 잘 필기해서 암기하고 시험에서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학점을 받은 수업의 내용은 시험이 끝난 후에는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 다고 한다. 만약 우리 학교의 교육이 이런 방식으로 된다면, 그야말로 앵무새 교육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현대의 급변하는 지식 사회에서는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 중에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가치가 없어지는 지식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지식을 자체로 암기하고 시험 보는 것이 학생들에게 장기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지식 자체 보다는 그 지식을 학생들 자신의 삶 속에 어떻게 연계시키고 활용할 수 있는 지가 중요할 것이다.
김영춘 UNIST 교수·경영학부
<본 칼럼은 2015년 4월 20일 울산매일신문 19면에 ‘죽은 지식과 산 지식’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