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CES’ 쇼를 다녀왔다. Consumer Electronics Show를 뜻하는 이 전시회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새해에 열리는 전자제품경연장으로, 전세계 가전기업들이 신제품을 발표하고 미래방향을 소개한다. 그리고 최근 자동차기업들의 참여가 늘어 이제는 모터쇼인지 가전제품쇼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었다. 세계 최대라는 규모의 공간속, 봇물터지는 신제품발표와 전시를 발바닥 닳고 종아리 터지게 돌며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러나 제품 자체가 아니라 세련의 미학이다.
기업들은 저마다의 기술자랑에 난리통이었다. CES가 ‘China Electronics Show(차이나일렉트로닉쇼)’라는 농담을 실감케한 수백 중국기업들은 자사제품이 경쟁 한국기업보다 얼마나 더 뛰어난지 비교설명하는 탓에 듣는 필자의 머리가 아팠다. 세계 최대 가전 하이얼이나 세계 최대 드론 DJI부스에서 온갖 제원, 기능을 설명하는 용어들은 분야 나름의 전문가인 필자도 부대꼈다.
삼성, 엘지에서는 부스의 상당면적을 일상 거주공간으로 만들고 시나리오별 사용신을 통해 제품을 설명해 아직 우리가 중국 경쟁사들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주행시뮬레이터가 탑재된 인테리어모듈에 앉히고 설명해준 현대차그룹의 부스 또한 대단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부스가 소개하는 설명의 주된 내용은 중국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제원과 성능에 관한 수식어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 북새통속에서 몇 일본기업은 사뭇 달랐다. 소니의 부스는 삼성이나 엘지처럼 큰 성채를 쌓지않고 개방된 제품별 소전시관을 두어 편안한 느낌을 주었는데, 더 큰 차이점은 제품의 발표방식이었다. 아이보라는 로봇강아지를 발표하는 동안 그 어떤 센서나 카메라, 배터리, 모터의 성능에 관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로봇에게 이름을 불러 달려오게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애교를 부리며 앉혔다 일어서게 하고, 관객에게 다가가게해 얼마나 진짜 강아지처럼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로봇인가를 어필했다. 주인을 알아보고 따르는 것도 진짜 강아지처럼 오랜시간을 공유하며 정을 붙이는 과정을 거치게 함으로써 진짜 강아지같은 감정을 갖게 한 것이 큰 차이점이다. 예단컨대 우리 기업이 만든 로봇강아지라면 주인을 인식케하는 간단한 절차를 넣어 곧 바로 따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전자가 불편하고 후자가 편리할 수 있다. 하지만 1초만에 주인바꾸기 리셋이 가능한 기계로봇과 진짜 반려견처럼 마음을 얻는 노력행위를 기꺼이 요구하는 감성로봇이 개인에게 던지는 가치의 차이는 크다.
자동차기업 혼다부스에서 만난 로봇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의 일원이 돼 성장하는 어린이와 삶을 공유하는 보모로봇부터 거동이 불편한 어른의 팔다리가 되어주는 로봇, 하이킹을 하는 동안 옆에서 배낭이나 짐을 싣고 같이 움직여주는 친구로봇, 사람이 못하는 불붙은 장애물을 치워 동료소방관이 화염너머 고립된 사람을 구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방로봇을 설명하는 동안 단 한번도 그 로봇에 쓰이는 센서나 모터, 배터리나 통신방식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로봇을 지칭할때에도 ‘This’나 ‘It’이 아니라 ‘He’나 ‘She’를 사용해 인간처럼 느끼도록 한 점은 소니나 혼다가 얼마나 인간다움에 목표한 로봇의 본질을 알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유럽기업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섬뜩함을 느꼈다. 아직도 우리 기업의 갈길이 멀구나. 여전히 일본과 유럽이 앞서 나가고 있구나.
식당의 본질은 맛있는 음식을 하는 것인가다.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어야 좋은 식당이다. 그런데 그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방송만 틀면 엄지척 맛집으로 넘쳐나는 요즘 세상 맛없는 식당도 솔직히 드물다. 깨끗하고 편한 식사공간을 만들고, 먹으러 가고 먹고 나오는 경험을 배려해 수저를 정갈히 놓아주고, 음식이 들고 날때 맥을 끊지않고, 방에서 나올때 신발을 나가는 방향으로 돌려놓는 좋은 시퀀스를 연출하는 식당은 더 고급이고 더 훌륭한 식당이다. 망할 수가 없지 않은가. 본질을 꿰뚫는 노하우의 끝은 세련됨에 있다.
품질 좋고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명품이 될 수 없다. 감성돋게(?)하는 세련됨을 갖추고 있을때 비로소 수준높은 제품이 된다. 사람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맡은 일만 잘하는 그냥 성실한 사람, 해당 분야에서 그냥 알려진 기업이나 연구소가 될 것인가? 섬세하고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혁신하면 떠오르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세련됨 그 한끗 차이다.나는 혹은 우리는 세련됨을 아는가?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1월 24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세련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