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한창이다. 88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열리게 된 그러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말많았고 탈많을듯 했던 평창올림픽은 너무나도 멋진 개회식과 남북화해무드를 타고 초흥행중이다. 설연휴를 넘는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듯, 그리고 언제나처럼, 대한민국은 메달레이스에 열광하며 올림픽을 내지르고 있다.
평화의 제전이란 가치로 쿠베르탱이 부활시킨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과 구분지어 근대올림픽이라 부른다. 전쟁을 멈추고, 인체의 아름다움과 인간 역량의 경이로움을 겨루는 세계축제는, 그래서 정치나 민족, 국가적 기호를 금지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은 초기부터 개최국이 드러내놓고 ‘자랑질’하는 ‘국력총동원-버라이어티쇼’가 되었다. 나치독일의 선전장 1936년 베를린부터 동서냉전의 끝판왕 1980모스크바-1984 LA는 물론 지금까지도 올림픽 개최는 ‘선진국급 국력’의 인증샷이다. 개최국은 개·폐회식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문화수준을 ‘자랑질’하고, 메달을 통해 국력을 ‘자랑질’한다. 선수 개인의 역량에 가늠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스포츠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어떤 종목도 규모의 투자와 지원없이는 메달을 따기 힘들다. 올림픽을 통틀어 강대국·선진국이 아닌 나라이름을 10위권은 물론 20위권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대한민국은 벌써 두번의 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다. 성적도 세계 10위권이다. 이쯤이면 성공 국가 타이틀감 맞다. 거기에 무슨 이견이 있을까? 나도 자랑스럽다. 그런데 평창에서 필자는 아직도 여전한 ‘조급증과 콤플렉스’를 발견한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에 기대하는 응원의 대가, 어떤 종목이건 ‘환희의 자격’은 ‘무조건 무조건 금메달’이다. 엊그제 동메달을 딴 우리 선수의 얼굴은 금메달을 못딴 아쉬움으로도배돼 있었다. 대한민국의 ‘1등주의’는 필자의 40여년 평생 지속되고 있다.
필자가 영국에서 일하던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이 있었다. 당시 영국도 국가 전체가 광적으로 메달레이스에 흥분했는데, 신기했던 점은 1~3위 선수 구분없이모두 ‘메달리스트’라고 칭한 것이었다. 언론에서는 금메달수가 아닌 금·은·동메달 합계로 순위를 매기기도 했다. 당시 영국인 동료에게 “너희는 왜 메달색깔을 구분않니? 금은동을 합해서 순위를 매기는 그런 우스꽝스런 법이 어디있냐?”라고 물었다. 동료는 “연우야, 넌 0.01초가 메달색을 결정짓는 것이 노력의 대가로 페어(공정)하다 생각하니? 금은동은 언제든 엎치락 뒤치락할 수 있어. 따라서 우리는 그 것을 실력차로 보지않아. 운이지. 그리고 세상엔 금메달로 순위를 매기는 법도 없단다.” 한방 먹은 필자는 “야! 운도 실력이거든!”이라며 쏘아붙였지만 속으로 그들 생각의 폭과 깊이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올림픽 종합순위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금메달순이라는 규칙도 임의사항이었다.
지금 평창에서는 영국선수들, 아니 다른나라 선수와 관중들은 은메달,동메달에도 금메달이상으로 열광하고 기뻐하고 있다. 대한민국선수는 얼굴색이 메달색이라는 농담 따라 시상대의 우리 동메달리스트의 얼굴은 동(흙)색이다. 대한민국은 희한하게 금메달순위와 전체 합계순위의 격차가 크다. 반면 독일같은 수위권 국가들은 금메달 합계와 전체 합계순위가 거의 같다. 즉 언제든 금메달을 딸 수 있는 후보군의 양과 질이 뛰어나다. 우리는 죽을 힘 다해 꽃한송이를 겨우 피워낸, 언제 툭 꺾일지 모르는 메마른가지다.
바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은 1등만 쳐준다. 될성싶은 떡잎만 키운다는 발상은 2위, 3위군을 죽이고, 다양성과 질적 토대를 고갈시켰다. 1등만 믿고 대우했더니 호시절 지나 쓰러짐 중인 조선업은 일례일뿐 수많은 토픽이 개봉박두다. 대한민국 언론의 비하단골, 허구한 날 망한다던 일본자동차와 전자는 왜 아직도 잘 나가나? 주력을 넘어 언제든 치고 올라갈 2위, 3위 영역을 꾸준히 키운 체질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을 놀래키는 성과를 내려면 연구자에게 시간과 믿음, 지원이 필수다. 그러나 조직편의에 따라 재단한 기준으로, 심지어 비전문가가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니 천날 만날 들쭉날쭉 성과와 비위의 냉온탕이 되는 것이다.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헬조선’이라 자조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작 스스로는 금메달만 인정하고 박수쳐주는 이 ‘웃픈갑질’이 못내 불편한 사람은 필자만 아닐 것이다. 남북평화를 위한 단일팀편성으로 밀려난 우리 아이스하키선수의 아름다운 희생에 어차피 메달권도 안된다는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비아냥이나 올림픽폐회 즉시 버려질 비인기종목에 대한 관심은 논외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우리도 선진국이라 자랑질하려면 말이다. 조급증과 금메달 콤플렉스부터 지우라. 제발 힘들게 버티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옆사람, 앞사람에게 박수나 좀 쳐주시라. 1등하지 말래도 다할 사람들이다.
정연우 UNIST디자인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2월 20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평창올림픽=대한민국+우리’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