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경제 상황은 생산성과 효율성은 고착되었고 제품의 종류, 속성의 정형화, 서비스 산업의 진부화로 그 성장판마저 닫혔다. 고품질,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등 산업고도화를 노력하지만 수요는 정체, 공급은 포화에 이른 본질적 경제체질을 바꿀 수는 없다.
해외시장을 통해 수출물량을 확보하면 국내생산량 증가분에 따라 일자리를 늘려 경제성장이 가능하지만, 이 또한 녹록하지 않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는 품질과 기능, 인지도에서 밀리고 중국 등 신흥국에게는 가격과 물량에서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인 것은 모두의 상식이 된지 오래다.
그렇다고 이미 성숙화 단계에 이른 우리나라에 대규모 SOC사업을 일으켜 경제를 모색하기에는 그만한 규모의 건수도 없는데다가 잘못했다가는 나중에 국민적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다.
투기라 불렸던 부동산 열풍마저도 신경제라 궤변을 펴며 일어나길 바라는 듯한 우리의 상황은 딱하기 그지없다. 환율도 어렵고, 저유가는 우리에게만 이점이 아닌 탓에 기업실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경제의 내수 상황은 계속 힘을 잃어가고 있고 급기야 실업률 증가, 고용률 감소, 소비지수 감소 등의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효율성 제고, 경쟁력 강화같은 체질개선 수준의 기존방식으로는 지표 호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창조라는 낯선 키워드를 경제 앞에 가져다 붙여 혁신을 꾀하고 그 결실을 경제 성장으로 맛보려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이 생소한 단어에 우리 기업, 행정기관과 온 사회가 한동안 어리둥절했고, 아직까지도 뜻 모른 채 눈치로 타 기관, 타 기업 흉내내기 바쁜 곳이 많다. 요즘엔 마치 프랜차이즈 식당의 전국화처럼,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일종의 정부정책홍보서비스지점이 전국으로 순차 개소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각 광역시도마다 제각각 대기업을 하나씩 끼고, 특화된 척 개소식 때 언론에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차별성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그 특화된 내용이라는 게, 구색 맞추기에 급급하고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이 왜 홈쇼핑을 내세운 창조경제혁신센터인지, 강원도가 웬 빅데이터 센터가 되는지 맹목적인 차별화에 골몰한 나머지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 그런 단순한 지자체-연고기업 짝짓기는 성공은 고사하고 점점 더 모호성을 키우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촌스러운 인식 덕분에 디자인은 아름다운 포장이라는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 탓에 필자는 강연마다 디자인이란 “주어진 문제를 T3 즉, Tomorrow(미래), Trend(트렌드), Technology(기술)로 풀어내는 통찰력”이라고 열심히 주장하고 다니지만, 앞으로 112년은 걸려야 전파될 것 같다. 필자가 엮고 싶은 것은 T3 디자인과 창조경제라는 재료다.
그저 남들도 다 쓰는 3D 프린터 몇 대 가져다 놓고 낯선 부품 모형 몇 개 출력한다고 창조경제가 구현될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인터넷에 흔해 빠진 RC 헬리콥터 데이터를 다운받아 3D프린터로 출력해서 조립하고 ‘드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날린다고 그게 창조경제의 혁신성을 보이는 것일까? 그건 이제 식상한 쇼일 뿐이다.
울산이라면 말이다. 조선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수많은 관련 기업들이 중견규모부터 1인기업까지 눈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필자가 이해하는, 이 나라가 원하는 창조경제는 기존 경제 체제의 체질개선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기존 조선을, 기존 자동차를 더 잘 만들라는 게 아니라 이전에 없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장과 생태계를 창출하는 경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3D프린터로 검토용 모형이나 출력해서 개발 기간 단축한다는 그런 구태는 기업에서 알아서 하는 프로세스 개선작업이지, 창조경제혁신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 후원 기업 관계사의 그렇고 그런 제품을 전시하라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혁신적 도구는 혁신적 아이템을 만드는데 써야 한다. 진짜 혁신이 필요하다면 디자인을 담아라. 예쁜 포장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T3 디자인 즉, Tomorrow (미래), Trend(트렌드), Technology(기술)을 담으라는 것이다.
정연우 유니스트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5년 5월 18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창조경제와 디자인, 혁신과 도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