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나라는 ‘잘 살아 보자’라는 구호로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이 짧은 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룩했고 그 결과 국민들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경제적 수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이것은 국가가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인간 존중의 정책보다는 물질과 경제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추진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대한항공 경영주 일가의 ‘물컵 갑질’ 사건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그동안 땅콩 회항 사건, 물량 밀어내기, 대기업 CEO의 운전기사 폭언·폭행, 군 장성들의 군대 내 공관병 갑질 사건 등 다양한 갑질 사례가 있었고, 기업의 대표와 가족들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물질만능주의에 비롯된 다양한 형태의 갑질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재물과 지위의 힘을 잘못 사용한 결과로 나타난 갑질은 당연히 법과 규제에 의해 제한돼야 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방지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의 생각과 노력이다. 재물과 지위는 얻는 방법과 과정이 정당해야 하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법과 과정 또한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해야 한다.
조선시대 이율곡은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책인 격몽요결에서 ‘거경(居敬)’을 강조했다. 마음을 경(敬)에 둠으로써 근본을 세워야 한다 ‘거경이립기본(居敬以立其本)’. 여기에서 경은 타인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자기 스스로를 삼가고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 육체와 정신을 항상 바르게 유지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애써야 함을 강조했다.
인간이 가진 힘은 그것이 어떤 힘이든 올바르게 사용돼야 한다.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거나 지나치게 넘치도록 사용하면 결국은 위태롭게 되어 오래가지 못한다. 힘의 잘못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신의 인간됨, 자신의 그릇을 키우는 공부가 필요하다.
물론 세상에서의 입신양명을 위한 출세를 위한 공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오래 유지하기 위해선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공부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국민 모두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의 지도자들부터 솔선수범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하고, 그들의 자녀들 또한 잘 양육돼야 할 것이다.
갑질에서의 갑(甲)은 한문으로 열 개의 천간(갑~계) 중에서 가장 처음에 위치해서 우두머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갑은 큰 나무를 뜻하며 봄에 만물을 생장시키는 기운을 의미한다. 또한 갑은 오상(五常) 중 어짐을 의미하는 인(仁)을 뜻한다.
따라서 갑은 따뜻한 봄의 마음, 어진 마음으로 만물을 성장시키는 의미를 갖는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살리는 인(仁)의 마음이 존중되고 실천되는 나라가 되길 기대한다.
민병주 UNIST 기계항공·원자력공학부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8년 4월 24일 울산매일신문 18면에 ‘[사는 이야기 칼럼] 갑질 대신 인(仁)이 실천되는 나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