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발생하면서 분출된 에너지는 파의 형태로 땅속을 이동한다. 이 지진파는 진원지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감쇠한다. 진원으로부터 멀리 있으면 안전하다는 상식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원거리에서 지진파가 증폭해 지상 구조물에 큰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주로 연약한 지반 특성(부지효과)과 지형적인 특성(지형효과)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
지진파가 땅속을 이동하다 연약한 토층을 만나면 장주기 성분은 증폭하고 단주기 성분은 크기가 줄어든다. 이러한 주파수 성분에 따른 증폭 및 감폭 현상은 이론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현장에서 관찰됐다. 가장 유명한 예로 1985년 규모 8의 멕시코, 미치오칸 지진을 들 수 있다. 이 지진의 진앙지로부터 약 350km 떨어진 곳에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원거리에서는 지진파가 크게 감쇠하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미약한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당시 멕시코시티 인근의 암반에서 계측된 지진파는 아주 작게 계측됐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 있던 연약한 지반에서의 지진파는 특히 장주기 성분이 아주 크게 계측됐다.
이러한 장주기 성분의 증폭 현상은 장주기 특성을 갖는 고층빌딩들(병원, 공장, 아파트를 포함) 수백채를 붕괴시키고, 만여명 가까운 사망자 및 실종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로도 다른 많은 지진 사례들에서 이러한 연약지반에 의한 지진파 증폭현상이 무수히 발견됐고,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현상을 예측하는 연구에 임하고 있다.
지진파는 땅속 토층 경계면에서 굴곡하기도 하고, 특히 지표면의 지형에 따라 반사되기도 한다. 반사된 지진파는 인근의 다른 곳으로 전파돼 다른 지진파와 간섭해 증폭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 또한 이론적으로 규명 가능하며, 많은 지진 사례들로부터 관찰돼 왔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연약지반에 의한 지진파 증폭현상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주요한 구조물들이 평지에 많이 위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지에는 송전탑, 도로 등 주요 시설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산지 바로 하부에 거주시설들이 위치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지형으로 인해 지진파가 증폭하고, 이 증폭된 지진파가 산사태 등의 지반변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흙댐이나 제방 같은 지형에서도 지진파가 반사돼 증폭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이렇듯 지진파는 땅속과 지표면의 여러 요인에 따라 감쇠되기도 증폭되기도 한다. 지표면에서의 지진파를 정확히 예측해야 정확한 내진 설계가 가능하므로, 지반에서의 지진파 증폭현상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연구팀은 작년 포항 지진 이후 현장 조사를 하던 중 진앙지로부터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인접한 언덕 위의 두 마을에서 피해 양상이 상이한 것을 발견했다. 이동식 지진계를 설치해 여진을 분석함으로써 두 마을에서의 지진파가 다른 것을 확인했다. 지반과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지진파 증폭 현상이 발생했음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가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진파를 조금 더 정확히 예측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민 UNIST 도시환경공학부 조교수
<본 칼럼은 2018년 5월 4일 울산매일신문 19면에 ‘[현장소리 칼럼] 지진 진원지가 멀면 안전할까’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