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지난 4월말에 있었고,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겠다는 역사적 선언을 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며 핵실험을 강행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 그에 상응하는 대응수위를 높여 동해 앞바다에 항공모함을 배치, 미군과 강도 높은 연합훈련을 하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간 많은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 적대에서 벗어나 공존으로 향하는 대전환과 신데탕트(detente) 시대의 도래는 반갑기 그지없다.
분단 7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잃어버린 것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지역적 상상력이다. 한국문학의 입장에서 보면, 평안도와 황해도를 아우르는 서북도 지역은 경기지역과 더불어 근대문학의 또다른 발상지였다.
최초의 장편소설 ‘무정’(1917)을 쓴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고아였던 엘리트 이형식, 선각자 집안의 영애지만 기생으로 전락한 박영채, 부유한 기독교 장로의 딸로 세상물정 모르는 김선형의 삼각관계와 민족 계몽 사이의 갈등이 벌어진 배경은 대동강이었다.
같은 대동강을 바라보며 주요한 (평안남도 평양 출신)은 근대문학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이미 쓴 바 있고, 주요한의 동향 친구인 김동인은 역시 동향 출신의 문인과 화가를 모아 최초의 근대 문예동인 ‘창조'(1919-1921)를 만들었다. ‘화수분’의 작가 전영택 (평양), 문필가이자 교육자였던 오천석 (평안남도 강서), 근대미술의 1세대였던 화가 김찬영 (평양) 등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창조’의 동인이었다.
김동인의 ‘창조’파에 대항해 ‘폐허'(1920-1921)라는 동인을 만든 염상섭은 서울 출신이지만 그 역시 서북도의 문학적 자장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서울에서 평안남도 남포까지의 화자의 여행을 담은 그의 첫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에서 남포는, 단돈 3원50전에 3층집을 짓고 1차 세계 대전 이후 도래할 세계화합을 이야기하던 광인 김창억을 만난 곳이다. 서울의 인천과 같은 평양의 관문 남포는 그가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된 3·1 운동에 참여하고 옥고를 치룬 장소였다.
남북한의 분단으로 인해 월북 작가나 납북 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더디게 진행된 것 또한 사실이다.
풍부한 평안도 사투리로 토속적 풍경을 세련되게 묘사한 모더니스트 시인 백석 (1912-1996), 친일의 유혹에 굴복없이 월북해 초기 북한 문학을 건설한 한설야 (1900-1976),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소설가 이기영 (1895-1984), 좌파문예조직을 이끌었던 임화 (1908-1953), 보던 보이 박태원 (1906-1986), 단편소설의 대가 이태준 (1904-1970), 가혹한 옥고를 치르며 사상전향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김남천 (1911-1953) 등등, 1988년 해금이후 이들의 연구에 진전이 있었지만, 이 작가들의 생몰연도에 붙은 물음표가 가리키는 것처럼 월북 및 납북 작가들에 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소위 만철(滿鐵)이라고 부르던 만주철도 역시 해방이후 사라진 우리의 지역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불하받은 철도가 만철의 기원이다.
만철은 한반도의 서부로부터 서울-평양을 거쳐 올라온 경의선과 대련-봉천의 철도와 연결하고,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동해선이 원산을 거쳐 나진-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올라간다. 이 동쪽과 서쪽의 철도들이 신경(장춘)에서 만나 시베리아 철도와 뻗어나가는 철도다.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남북의 철도망 연결을 통해 신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은, 그간 반도를 섬처럼 봉쇄하고 있던 분단이라는 현실을 넘어 광활하게 펼쳐진 만주벌을 마주하는 상상과 흥분을 자아낸다. 물론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문제는 산적해있다. 한반도 주변국간의 냉철한 판단과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 올 시대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요즘의 데탕트는 앞으로 오지 않을 호기(好期)일지도 모른다.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주요한의 말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재연 UNIST 기초과정부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5월 21일 울산매일신문 18면에 ‘[시론 칼럼] 남북한의 신데탕트 시대에 거는 기대’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