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학자 토마스 미즐리 쥬니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가 비운의 과학자 혹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발명가라고들 한다. 그가 1920년대 초 발명한 유연휘발유는 자동차의 엔진노킹을 획기적으로 줄였으나, 인체에 치명적인 납을 대기 중으로 대량 방출시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1930년대에 발명한 프레온 가스는 냉장고의 냉매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오존층 파괴 물질로서 이후 사용이 금지되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발명자였으나, 역사가들은 지금 그가 지구 역사상 우리가 숨쉬는 공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생물체였다는 최악의 평가를 내린다.
인간의 산업활동에 의해 새롭게 개발되고 사용되는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있다. 이것들은 인간의 생활을 돕고 윤택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지만, 잘못되면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위험을 주게 된다. 1984년 인도 보팔의 살충제 공장에서 일어난 유독가스 유출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6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20세기 최악의 화학재난으로 기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경북 구미의 한 사업장에서 불산을 운반차에서 저장탱크로 옮기던 중 12t이 누출되어, 사망 5명 부상 18명 가축 피해 4000여마리 농작물 피해 212㏊가 보고되었다. 이후에도 2013년 삼성 화성공장 암모니아 유출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화학물질 유출사고는 폭발이나 유출에 의해 소량으로도 대형 피해를 가져 올 수 있어, 그 위험성은 상존한다.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취급량은 2006~2012년 기간 27%나 증가한 것으로 통계되고 있다. 2014년 환경부에서 발간된 우리나라의 2012년도 화학물질 배출 이동량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총 233종의 화학물질이 제조 혹은 사용되고 있으며, 집계된 총 1억5800만t 중에서 국내 상위 10개 산업단지가 전체 취급량의 74.2%를 차지하고 있다.
울산의 경우에는 미포와 온산 2개 국가 산단이 나란히 2등과 3등의 취급량 규모지만, 두 곳을 합치면 국가 전체 취급량의 36%를 차지한다. 1위인 여수의 33% 수치를 상회한다. 취급량의 증가는 화학사고의 빈발로 이어지는 형편이다. 울산의 화학사고 발생빈도는 전국에서 높은 수준으로, 연간 13.3건에 이르며, 이 중 76%가 취급자 부주의 등에 의한 유출사고였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동시에 급격히 겪은 울산은 공단과 주거지역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워, 석유화학공단에서 불과 5㎞ 이내에 울산 인구의 13%가 거주하고 있다. 구미 불산사고 당시 사고지역 반경 3㎞이내 주민 1777명이 대피한 것을 감안하면 훨씬 큰 인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공단에서 어떤 물질들을 얼마나 다루고 있는 지, 과연 안전한 지에 대한 궁금증이 절로 생기게 된다.
미국과 유럽의 대다수 국가에서는 산업체에서 취급하고 배출하는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물질 종류, 취급량 등에 대한 통계를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1986년 화학사고 비상계획 및 알권리법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법령과 안전관리 체계를 개선해 왔다. 특히 법령의 313조에 적시된 독성물질 배출량 보고제는 총 650종의 대상물질에 대한 이력관리 및 대기, 물, 토양에 대한 영향 평가를 의무화 하고 있어, 지역 주민은 우편번호만 가지고도 인근의 산업체가 취급하는 물질에 대한 독성 및 취급량 정보 등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미 불산사고를 계기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등을 올해 1월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화학물질 배출 이동량 정보시스템 등을 통하여 지역별, 산업체별 취급물질의 종류와 양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보고제도는 기업 활동이나 보안 등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단서 조항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기업의 구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정보의 제공이 필수적이다. 지자체 또한 이렇게 얻어진 상세정보를 보다 쉽게 주민에게 고지하고, 과거에 어떤 사고가 인근에 있었는지, 향후 어떠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 등을 적극적으로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 산업체는 현재의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지속적으로 제도를 확장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명인 유니스트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5월 26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화학물질 안전사고에 안심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